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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결국 인생은 괴로운 것

단상

by 김성호

내 우울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본다. 따져보면 결국 배다. 배를 타기로 한 내 선택이고, 그 선택이 가져온 상실이다.


이전까지 난 우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해서 용감했고 쉽사리 무모해졌다. 돌아보면 얼마나 오만한 날들이었나. 나 말고 어느 하나 탓할 것이 없다.


한 톨도 내줘선 안 될 것들을 한 번에 한 움큼씩 놓아버리고, 마침내 그 빈 자리를 감당하게 되고나서야, 나는 나의 우울과 대면하였다. 그 감정이 얼마나 집요하고 야비했던지 무신경한 마음이 찢어지고 너덜거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길을 잃고 지도를 보다가, 덜컹이는 열차칸 안 빈 자리를 찾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문득 본 창밖에서 주황빛 노을이 숨을 거둘 때, 나는 나의 하찮음을 책망한다. 슬픈 꿈에서 깰 때나, 그런 꿈을 꿀 줄 알면서 다시 잠을 청할 때, 나는 나의 지난 선택을 후회한다. 그러고보면 우울은 더욱 큰 우울을, 자책은 더 잦은 자책을 불러오는 게 분명하다.


나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우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오랜 병법서의 가르침을 받들기로 했다. 이길 수 없으면 도망치고, 기왕 도망칠 거라면 잡히지 않을 만큼 빨라야 한다.


그 결과 나는 요즘 몹시 바쁘게 지낸다. 아주 바쁘게 지내다보면, 머릿속에도 마음 가운데도 여백 하나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많이 지치고 힘겨워서 아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때가 오는 것이다. 이런 날이 지속되다 보면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만 같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그때처럼.


때로 어느 귀한 것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게 한다. 그 괴로움을 감당할 이가 오직 나 혼자란 걸 깨닫는 건 더욱 괴로운 일이다. 결국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2019. 4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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