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있으면 된다. 그걸 못해 모다 부숴진 것 같아도 돌아보면 아무렇지 않을 일. 다섯살 때 땅에 떨군 사탕을 떠올려 오늘 엉엉 울지 않듯이, 한참 지나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
눈을 감고 숨을 멈추고 할 수 있는 최대한 고요해진다. 게으른 새가 날고 빗방울이 판자 위로 투두둑- 떨어지면 꺼내둔 김밥이 쉬어가는 그런 오후.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고 튕겨오른 물방울이 먼지와 뒤엉킬 때 단무지가 단맛을 잃어가는 저녁이 다가온다.
나는 하늘로 날아 구름 위로 솟구쳐 우주까지 나가서는 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저 너머 어딘가로 순식간에 추락한다. 그쯤되어 돌아보면 내가 잃은 것은 땅에 떨군 사탕이나 십년 전 잃어버린 오백원이나 부서진 레고 같은 것과 다를 바 없고. 슬픔도 기쁨도 잡히는 무엇도 없는 그곳에서 껴안을 팔도 바라볼 눈도 없는 존재가 되어 가만히 가만히 쪼그라든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다가 그렇게 나이를 먹어 쉬어터진 김밥처럼 숨을 거두면 그건 그대로 괜찮은 인생.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았음이다.
2020. 5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