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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죽을 꽃에 물을 주듯

단상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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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올스도르프 공원묘지에서 한나절을 보낸 일이 있다. 숲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거대한 공원 곳곳엔 묘비와 각종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기억남는 하나는 슬픈 여인의 동상. 고개를 돌려 눈물을 쏟는 여인의 모습은, 그대로가 슬픔이었다. 그 동상을 세워두고 묘지를 찾은 이는 그로부터 어떤 감정을 기대했을까.


위안이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슬퍼하는 무엇을 보며 찢어지고 무너지는 슬픔을 쓰다듬고 다스렸을 테다. 얼마나 만지고 또 만졌던지 반질반질 윤이 나는 팔뚝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많이 슬퍼하는 사람은 그렇게 다정해진다.


줄기가 잘려진 꽃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빨리 죽는 것이 주는 위안이란 게 가끔은 섬뜩하지만 그보다는 고마울 때가 많다. 죄다 시들어 떨어질 생명이 발하는 빛이란 게 어찌나 갸륵한지 나는 꽃들을 몹시 다정히 대한다. 빠르게 식어가는 우주에도 마음이 있었다면 창백한 푸른 점과 그 위에 기생하는 존재들을 애달파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태양이 불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죽을 꽃의 물을 갈아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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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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