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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어떡해야 하나

단상

by 김성호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익숙한 무엇 하나 없는 들판을 혼자서 걸어간다. 돌아보면 하나하나 새로운 풍경 속 이리저리 둘러보며 정처 없이 걷는데, 어디선가 아낙 하나 다가와서 와락- 품에 든 걸 냅다 떠안긴다. 이런! 젖도 떼지 않은 어린 아이다. 하얗고 검은 눈 두개가 똘망똘망 올려본다. 이걸 어쩌나 발을 굴러봐도 머릿속은 새하얗다. 아낙은 저기 멀리 도망치는데 나는 뛰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어어어- 소리만 내고 있다. 이거 진짜 어쩌나. 주변을 둘러봐도 관심 갖는 사람 하나 없다. 어쩔 줄 모르고 서있으니 아이가 빽- 하고 울어버린다. 덥지도 않은데 땀은 뻘뻘 흐르고, 아무것도 못하면서 마음만 급해진다. 배가 고픈 건가 실례를 한 건가 이거 완전 뭣됐구나 고민해도 모르겠다. 급한대로 아무나 잡고서는 손짓발짓 다 하는데 이거 웬 걸 죄다 제 일이 아니란다. 애는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대고 나는 그저 도망치고만 싶다. 몰라, 내 애 아니라니깐!


경찰서에 가 봐도 관공서에 가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아니 누가 냅다 주고 튀었다니까. 나혼자만 답답하다. 내 애가 아니라는데 되려 큰 소리 내지르곤 거리로 내쫓는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되냔 말이다.


나도 누구한테 안겨놓고 내뺄까. 아무 데나 슬쩍 가져다 놓을까. 음식점에 들어가 모른척 아이를 놓고 나오는데 종업원이 쫓아와 붙들고 화를 낸다. 나는 어쩌지 못해 아이를 품에 안고 다시 또 걸어간다.


인적 없는 골목길에 아이를 놓아두고 몇발짝 못가 돌아본다. 아 이러면 딱 죽겠는데 싶다. 아니다 내 애도 아니잖나 누군가는 돌보겠지 하다가는 이래도 되는 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멈춰서 지켜본다. 이대로 아무도 살피지 않으면 애는 계속 울고 울고 울고 울다가 아무 소리 없어지겠지. 사람들 몇 지나치는 그 길 한 켠에 놓인 아이는 처음 그 모습처럼 가만히 놓여있다. 지켜보던 나는 끝내 돌아서지 못하고 아이를 안아든다. 아 정말 이걸 어쩌나. 어째야 하나.


너네 나라 사람이잖아. 너네 동네 사람이잖아. 내 아이가 아니잖아. 아무리 말해봐도 알아듣는 사람 하나 없다.


어찌어찌 공항까진 왔는데 아이를 맡아주는 사람은 없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아이는 내 품이다. 이거 이거 이럼 안 되는데, 나는 내 나라로 가야하는데. 버리고 갈 수는 없는 거잖아. 아이가 울텐데. 울고 울고 울다가 울음을 그칠텐데.


비슷한 꼴의 여행객을 붙잡고 상황을 설명한다. 이 애 누가 던져주고 가버렸어. 나는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주고 가버렸다. 아이구 이런 어쩌나. 다들 한 마디씩 보탠다. 이걸 어쩌나. 어쩌나. 어쩌나.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하나 둘 탑승구로 향한다. 아이구 어쩌나. 어쩌나. 어쩌나. 하면서.


그냥 두고 가면 안 되느냐 한다. 착한 척 안 해도 되잖느냐, 아는 사람도 없잖냐, 왜 별나게 그러느냐 한다. 도대체가 이거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건가.


여행자들은 비행기를 타러 모두 가버리고 나는 그대로 남겨졌다. 이거 이거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르면서. 왜 하필 나였을까. 왜 그 여자는 내게 아이를 안긴걸까 당황하면서.


품 안에서 움직거려 내려보니 하얗고 검은 두 눈이 울듯말듯 찡그린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나도 그냥 울어버리고 싶은데.



2020. 5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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