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을 펴고 전속 항진!

단상

by 김성호

적지 않은 나이에 백수로 살고 있다.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재능과 실력이 못내 안타깝다. 빛을 보지 못하고 끝날까 두려운 마음도 없다고는 못하겠다. <죠스>에 나오는 상어 지느러미처럼, '실패'란 단어가 종일 등 뒤를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소설공모 창작의도에 나는 이렇게 썼다. 뱃놈에게 가장 중요한 건 위치를 내는 것이라고. 망망대해 가운데서 제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씩 태양과 별을 관측하고 각도를 내고 시간과 함께 계산해 위도와 경도를 따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흔히들 항해를 인생과 같다고 말한다. 것도 21세기가 아닌 16세기쯤의 항해다. 어디에 땅이 있는지 그 땅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절의 항해 말이다. 인생이나 항해나 결국은 여기서 저기로 가는 것이다. 잘 아는 곳에서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풍랑을 만나고 해적을 만난다. 그 모든 위험을 뚫고 어쨌든 가는 것이다. 항해고 인생이고 시작은 위치를 내는 것부터다. 내가 어딨는지를 알아야 어디로, 어떻게 갈지를 정할 수 있다. 더 전진해도 될지, 이쯤에서 쉬어가야 할지, 더 안전한 곳으로 멀찍이 돌아갈지를 판단할 수 있다.


모든 게 변하고 흔들리는 곳에서도 제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몇 가지쯤은 알아두어야 한다. 흔들리는 윙브릿지에서 저기 변치 않는 별을 구하듯 간절히 의지할 무엇을 찾는다. 부처는 저 자신과 진리를, 칸트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저 안의 도덕법칙을 발견했다던데, 그런 건 내게 너무 멀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작은 배 윙브릿지에 위태롭게 선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그따위 고민을 하고 있을쯤 멀리서 동이 튼다. 하늘이 개고 해무가 걷힌다. 배 양 옆으로 또 다른 배 수척이 함께 나아가고 있다. 돛을 편다. 검은 바다 위 하얀 돛이 장관이다. 수평선 위로 태양이 고개를 든다.


가만 보면 내게도 잘 변치 않을 무엇이 몇개쯤은 있다. 하나의 항해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우리는 변치 않는 무엇을 하나쯤 알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나아갈 때다. 계속 가면 육지가 나올 만한 쪽으로, 돛을 펴고 전속 항진!



2021.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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