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왜 사표를 내야 했는지, 추가보도가 막힌 시점부터 어떤 무력감을 느꼈는지, 겨우 지켜왔던 자긍심은 또 어떻게 무너졌는지 정제된 대화에도 충실히 담겼다고 생각한다. 취재대상과 독자, 내 뒤에 선 회사와 동료들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명의 기자는 어디까지 외로워질 수 있었나.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물러났으나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므로 부끄럽지는 않다.
윤지선 하나를 증오하지도, 그를 둘러싼 이들을 경멸하지도 않고서 민감한 사건을 다뤘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돌아보면 매 순간 증오와 경멸의 씨앗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 싹을 틔우지 않고서 책무를 다했으므로 역시 부끄럽지 않다.
결코 길지 않은 기자생활 중에 마음 다해 취재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건 자랑스런 일이다. 그 길을 가로막은 온갖 하찮은 것들을 뿌리친 것이, 그리하여 한줌 쪽팔림도 남기지 않은 것이 오늘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수긍할 수 없는 것에 수긍한 척 물러서지 않아서, 오로지 나의 작은 저널리즘을 지키려고 마음을 다했기에 부끄러울 수 없다.
기사를 쓴 김도연 기자와 대화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제 목소리가 반영되는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게, 애써 애정의 근거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새삼 느꼈다. 한 줌 자긍심을 얻기 위해서 굳은 땅을 파고 또 파야만 했던, 그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텨야 했던 나의 지난 시간이 못내 안쓰럽다.
그나저나 내 인터뷰 기사 옆에 실린 클릭줄세우기 얘기는 충격적이다. 있는 동안 마음 다해 애정한 회사가 너덜너덜해져서 굴러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쓰라리다. 내용이 거짓처럼 읽히지 않아서 민망하다.
기자와 기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충실히 평가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포털이 장악한 언론환경 가운데 기자가 제 업무에 온당한 피드백을 받을 길이 마땅치 않다. 클릭수와 댓글은 완전히 무의미하진 않더라도 상당히 왜곡되고 편협하다. 데스크의 평가를 존중하는 기자는 너무 적고, 거기엔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따른다. 선후배들의 귀담아 들을 만한 의견교환은 사라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나.
기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평가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그로부터 스스로 나아지고자 하는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무능하고 무력함이 읽히는 취재와 기사가 양산되지 않도록, 제가 속한 조직을 창피하게 여기는 기자가 늘지 않도록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한 줌 고민도 보이지 않는 평가체계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5년의 시간 동안 간절했던 건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동료였다. 내 열망과 의지를 자극하는 동료였다. 애사심을 일깨우는 동료였다. 파이낸셜뉴스엔 그런 동료가 될만한 기자가 몇이나 있나. 사시 중 하나가 기독교 사랑 구현이니 그 종교식으로 말하자면, 기자다운 기자가 열명만 있으면 어떤 절망의 언덕에서도 희망을 구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엔 그 열명의 기자가 아직 남아있을까.
퇴사하고 전화를 많이 받는다. 분명히 해두자면 내가 인스타에 회사 얘기를 쓰는 거나, 회사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거나, 아주 몹시 매우 자제하고 있다. 말 한 마디로 그 태도가 바뀌지도 않을 거다. 무엇보다 어느모로 봐도 떠난 내가 있는 당신보다 그 회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가.
퍼스트클래스 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화이팅이다.
2021. 8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