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 더 현명하게 살아야지

단상

by 김성호

퇴사의 결정적 계기가 된 나가지 못한 기사들. 다시 언론에 몸을 담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포트폴리오는 미리미리 정리해둬야 하는 것이다.


다시 본 기사는 꽤 적절한 것이었는데, 어찌해서 보도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건지를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연구윤리지침을 준수하지 않았고, 반박은 부실했으며, 저명한 연구자들의 비판까지 나왔음에도 기사는 끝내 나가지 못했다.


<교수신문>에서 이충진 교수가 다시 한 번 윤지선의 논문이 학술논문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내놨다. 가설과 결론 사이에 합당한 논증이 없다는 것이다. 혐오논란을 외면한 철학계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분명히 비판한다. '반지성적 파시스트로 낙인 찍히는 것이 억울해서' 다시 기고했다는 이 교수는, 침묵하는 철학계의 면전에 대고 정의봉을 휘두르다가는 '말 귀를 못알아 듣는 사람과의 논쟁은 어리석다'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철학계에서조차 '혐오의 논의'란 자성이 나오는, '논증에서도 심각한 결함을 가진' 글에 대해 어느 누가 제대로 비판하였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가톨릭대 조사결과가 나온 뒤에야 결과를 옮기면 책임을 다하는 것인가.


서재를 정리하며 꽂혀 있던 책 수십권을 빼두었다.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는 것들로, 헌책방이 안 사면 폐지로 처리할 것들이다. 개중에선 철학과 페미니즘 서적도 여럿 있었는데, 그 저자들 중엔 관음충 문제를 취재할 때 입장을 내달라는 나의 요청을 외면한 이들도 몇이 되었다. 그들의 책이 내 책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몹시 역겨웠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기자생활을 5년쯤 하며 수십번을 고치고 또 고친 기사가 몇개쯤 있다. 돌아보면 어느 하나도 기사의 문제는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솔직했다면 기사를 포기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몇 주 동안 수십번을 고치게 하고 온갖 보고서까지 내도록 했으면서도 끝내 기사가 나가지 못하게끔 한 인간들은 쪽팔림을 알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말 귀를 못알아 듣는 사람과의 논쟁은 어리석다. 이젠 좀 더 현명하게 살아야지.



2021.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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