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었다

속초여행

by 김성호

구월 열여덟 번째 날이었다. 우리는 속초로 갔다. 목적지는 서점이었다. 가까이 붙은 두 가게에서 책 한 권씩을 골랐다. 산 기자와 죽은 소설가가 한 봉투에 들어갔다. 바람이 나직하게 불었다. 배가 부르도록 먹고 마셨다. 생선살에 초장을 잔뜩 찍어 씹었다. 공원이었다. 운동장이었다. 놀이터였다. 웃고 떠들면서 조금씩 잔뜩 취해버렸다. 코를 골며 잤다. 늦게 일어났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식당을 봤다. 누룽지탕과 시래기국밥을 시켰다. 반찬마다 깨를 올리는 사람은 정성스럽다. 밝은 찬엔 검은 깨, 어둔 찬엔 밝은 깨를 뿌렸다.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 접지부가 삭았다고 했다.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정비소에 들렀다. 고장 난 부품을 갈았다. 복권방에는 나이든 사내들이 구수한 말씨로 어울렸다. 좁은 골목길 따라 차를 몰았다. 대문 앞에 벽을 짚고 할머니가 섰다. 나이든 시선이 떠나는 택시 꽁무니에 닿는다. 돌아가는 딸이 탄 게 틀림이 없다. 눈으로 배웅하느라 뒤에 차가 선 줄도 모른다. 노인의 어깨가 서럽게 가냘프다. 택시 나간 골목 끝에 술 취한 사내 비틀댄다. 푸른 철판 벽으로 둘러 세운 재활용 센터가 뒤에 섰다. 나란히 늘어 붙인 간판들이 새롭다. 산이며 바다며 깨어진 기와이고 떨어진 문장들이 간판마다 나란히 들어섰다. 바람이 분다고, 살아봐야겠다고, 그 아래 보일 듯 말듯이 적힌 이름은 폴 발레리다. 신호가 바뀌고 방향을 돌렸다. 우리는 길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속초에는 8만 명이 살고 있다. 책을 파는 사람과, 깨를 올리는 사람과, 차를 고치는 사람과,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과, 헤어지자마자 그리워하는 사람과, 술 마시고 흔들리는 사람과, 책에서 삶을 꺼내는 사람들이다. 저 설악산 너머 구름이 흐른다. 가을이었다.


2021. 10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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