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상망차일배

제주에서

by 김성호

인간의 두뇌란 게 묘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도 될 것은 끝끝내 끄집어낸다. 그럼에 나는 고깃배 불빛 바라보던 장계의 마음으로 추사의 싯구절이나 더듬을 뿐이다. 장무상망차일배, 장무상망차일배, 장무상망차일배. 오래도록 잊지 말자던 굳은 기원도 거센 바람 앞에 뿔뿔이 흩어진 게 한참도 더 된 얘기다. 봄배는 호풍 따라 돌아온다 했건만 한 잔 술은 엎질러져 영 못쓰게 되어버렸다. 영원 대신 오래도록이라 써넣은 추사의 현명함만 시간을 가로질러 여적 빛을 발한다. 재능 있는 작자들은 재수가 없다느니. 그냥 그러고 넘어가기엔 추사만한 노력의 화신도 없을 것이다. 이런 시부랄 날 술이나 왕창 퍼먹다가 필름이라도 끊겨버리면, 아 나는 얼마나 또 혼자서 괴로울까.


2021. 1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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