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의 묘

보령여행

by 김성호

조선에서 손꼽히게 눈 밝았던 사람이 생전 직접 고른 묫자리에 왔다. 당대 선비들은 이 선생을 가리켜 진귀하고 괴이하며 이상하다고 평했다. 생명을 귀히 여기던 선생은 생전 많은 이를 가난과 수해로부터 구했으나 스스로는 오랫동안 불행하였다. 시대는 인간을 가볍게 여겼고 그의 재능 역시 사이한 것 쯤으로 무시되곤 하였다. 일가가 모두 묻힌 묘지에선 그의 자식들의 비석도 여럿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요절이라 할 만큼 이른 죽음을 맞았다. 야사는 묫자리가 품은 흉한 기운을 막내인 그 스스로 감당하려 했다 전한다. 대신 그의 예언대로 형의 가문에서 두 명의 정승이 나오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왜란 당시 북인 영수가 되는 이산해다. 당대의 인물인 이덕형을 이산해의 사위로 고른 이도 역시 선생이다. 선생이 나고 묻힌 충청남도 보령과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서울 마포에선 오늘날 그를 위인으로 기록해 기억한다. 토정은 선생이 은거했던 한강변의 흙집이고, 일생을 그를 따랐던 호였으며, 이제는 마포에서 가장 유명한 길의 이름이 되었다. 선생의 삶으로부터 기억할 사실이 있다면 모든 화와 복은 그 모습 자체보다 다루는 태도가 중하단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믿음이 삶을 보다 진지하게 마주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생은 어느 곳에 인물이나 볼거리가 있다 하면 멀리까지 찾아가 마주하길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 자리에 터를 잡고 오래도록 누웠으니 여간 심심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가 일생 격식을 넘어 새로운 문물과 마주하길 즐겼으므로 멀리서 들고온 외국술도 좋아라 하실 게 분명하다. 이곳은 충남 보령땅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소이며 여행자인 나는 그와 시선을 나누려 한다.


2021. 1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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