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향기가

단상

by 김성호

유명인의 말과 글로 잘못 알려진 게 많다. 사이비 지식보따리상이 수입한 불량품을 검수없이 배급한 무능한 기자와 교수와 편집인들, 이걸 그대로 여기저기 써먹는 지적허영에 물든 자들이 거짓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만든다.


징기스칸의 일화며 명언은 거의 다 거짓이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사과나무 어쩌고 했다는 스피노자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을 뿐더러 그럴 사람도 아니다. 나도 좋아해서 여러차례 인용했던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 역시 폴 발레리와는 관련이 없다. 너 자신을 알라거나 악법도 법이라는 말도 소크라테스의 것이 아니다. 나는 네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말을 할 권리를 위해선 목숨걸고 싸우겠다는 명언은 물론 볼테르의 삶과 일치되긴 하다만 그가 한 말이 아니다. 지옥의 가장 뜨끈한 곳이 중립을 지킨 자에게 예약됐다는 글 역시 단테가 쓴 적 없다. 정말이지 온통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나는 가짜들을 좋아한다. 가짜들엔 진짜들이 갖지 못한 어딘지 짠한 진실이 스며들어 있는 듯 느껴져서다. 내가 좋아하는 가짜 명언 중 하나는 마크 트웨인의 것이다. 용서란 제비꽃이 자기를 밟아뭉갠 뒤꿈치에 남기는 향기라는 말, 나는 이보다 용서가 무엇인지 잘 드러내는 말을 본 적이 없다. 나를 밟고 그것도 모자라 뭉개고 지나간 새끼의 뒤꿈치에다가 향기를 때려 박는다는 자세, 자고로 용서라는 건 이 정도 각오와 도량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용서도 사과도 결국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것이므로 용서엔 사과따윈 필요치 않다. 그냥 내가 향기나는 존재일 것, 용서할 마음이 있을 것, 이 둘이면 되는 것이다.


물론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용서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눈 앞의 응징할 것들에 집중하는 데만도 바쁜 삶을 살았으니까. 그럼에도 왠지 이 말이 마크 트웨인의 삶과 사상과 작품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크 트웨인에게 용서에 대한 짧은 글을 지으라 했다면 그는 이와 비슷한 말을 했을테니까.


살면서 용서할 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만한 일을 겪은 뒤 일어서면 사과를 받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 인간은 용서할 자격을 얻는다.


나는 오늘에야 내게도 향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2022. 7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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