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여러 이유로 부모님 사는 집에 들어가 살다시피한다. 몇달에 한 번도 안 가던 것을 하루걸러 하루씩 간다.
내 집에 비하면 부모님집은 불편함 투성이다. 술도 책도 음악도 영화도 심지어는 책상조차 없다. 정말이지 내가 즐겨할 무엇도 없다. 당연하다. 그런 건 일찌감치 내 집으로 옮겨두었으니까.
부모님의 취미는 운동과 티비다. 그러니까 적어도 티비는 있단 뜻이다. 며칠만에 나는 즐길 걸 찾아냈다.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가 완결돼 올레티비에 올라와 있었다. 그날로 난 거실에 대자로 누워 새벽이고 아침이고 이 드라마를 보았다.
백수가 되고 가장 짜증스런 건 엄마가 아파졌단 거다. 파킨슨 진단을 받아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데 코로나까지 겪은 뒤엔 몇달째 기침을 달고 산다. 벽을 두고 낮에도 밤에도 콜록콜록 켁켁켁하는 소리는 듣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퇴행성 질환이나 코로나 후유증이나 답이 없단 건 똑같다. 꼭 이런 그지같은 것들만 찾아오는 게 아주 짜증스럽다.
그런 엄마가 덜덜 떠는 손으로 밥을 차린다. 나는 그걸 먹는다. 다섯 걸음이면 될 거리를 우유며 과일이며를 들고 덜덜덜 떨면서 한참을 걸어와서 내게 내민다. 나는 그걸 또 앉아서 받아 먹는다. 그럴때면 아픈 어머니가 제 발을 씻겨주는 걸 매일 견뎠다던 조선시대 어느 선비의 글이 떠오른다. 내가 알던 엄마는 이미 멀리 떠나버렸고 남은 엄마를 편하게 할 방법을 나는 이것밖에 알지 못한다. 나를 초등학생처럼 취급하는 아픈 엄마가 여기 남아서 나를 떠받든다.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난 몇년 전부터 어느정도 예고된 거였다지만 왜 하필 지금이어야 하는지 짜증이 솟구친다. 무력하다. 재난이다.
나는 서른을 훌쩍 넘긴 백수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고 산다. 그걸 잃어버리면 모두 끝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늦게 들어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엄마가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올 때면 나는 소파에 길게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다. 엄마가 나를 보고 말한다. 언제까지 놀거냐 공부는 안 하느냐고. 애인은 만나느냐 그러다 늙는다고. 티비에 정신이 쏠린 나는 버릇처럼 연작안지 어쩌고 하다가는 화들짝 놀라버린다. 나는 티비를 끄고 그 길로 집을 나선다. 엄마는 으흐흥 하고 울 것 같은 소리를 낸다.
나는 엄마의 많은 모습을 좋아했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이란 게 특히 좋았다. 엄마는 영리했고 지루하지 않았다. 엄마는 잔소리를 해도 내가 변하지 않을 걸 알았고 내가 삶을 망치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험 전날에도 종일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만화책 한 묶음을 빌려와 새벽까지 보는 나를 볼 때면 화를 참지 못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연작안지홍곡지지 어찌 쪼만한 새들이 봉황의 뜻을 알겠습니까라거나, 태공망이라거나 초나라 장왕이라거나 한고조라거나 제갈공명이라거나 뭐 대충 비슷한 예를 찾아서 엄마와 나 사이에 세워두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60점대가 찍힌 성적표를 문 아래 살포시 밀어두고 소설책을 읽고 있었는데 엄마가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허생 마누라가 조금만 참았어도 조선은 위인을 얻었을 것이라고, 잔소리는 영웅도 경제사범으로 만든다고 답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하하하 웃어버리고 하고픈 대로 하라거나 뭐 그러고 넘어가셨다. 나는 그런 날들이 좋았다. 그런데 그때의 엄마는 이제 없다.
나의 아픈 엄마는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며 히히히 쪼개는 제 아들이 스스로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들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제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고, 그렇게 말해줄 수 없다는 걸 매 순간 느낀다. 무엇보다 나는 엄마의 소망들을 이뤄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다. 한때는 너무 쉬워보였던 그 작고 평범한 소망들이 이제는 너무 멀고 귀찮게만 느껴진다.
결국 나는 계획보다 일찍 이력서를 쓰게 됐다. 오늘따라 엄마가 보고 싶다.
2022. 7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