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에 대하여

단상

by 김성호

이름모를 사람들이 술을 마시다 시짓기 대회를 연다. 장원은 술값 면제에 한 병을 상으로 얻는다. 한 잔에 일이만원씩 하는 비싼 술집은 내게 한참이나 주제 넘는 것인데 나는 글 한편에 한잔이다 두편에 두잔이다 마음대로 정하고는 꾸역꾸역 들이켠다. 꼴에 나도 시 좀 써 보았다고 가만히 홀짝이며 엿듣는 얘기들, 시제는 통곡에 대하여다. 곰곰이 헤아려보았으나 일생 한 번도 통곡한 적 없단 걸 깨달을 뿐. 통곡한 적 없는 삶의 통곡스러움에 대하여. 그러니까 이것이 내가 쓸 시문의 제목이다. 나의 집에는 종일 휴대폰 어플을 두드리는 엄마가 산다. 한 번 두드릴 때마다 일이원쯤 들어오는 누런 화면을 종일 투두둑투두둑. 매일 그꼴을 보자니 천불이 일어서 무어라고 하였는데 곁에 있던 동생이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서느냐 앙칼지게 쏘아대는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지금 엄마에게 일이원짜리도 못되는 자식인 듯하여 그저 자리를 박차고 나올 뿐이다. 아빠는 곁에서 동전과 지폐만 골똘히 들여다본다. 어느 유튜브 채널에선 몇년도 동전이 얼마고 일련번호가 어떤 지폐는 또 얼마라고 열을 올린다. 에라이 시펄 그깟 돈 해봐야 얼마나 되느냐고 짜증이 확 치미는데 성호야 엄마아빠는 그 돈이면 며칠을 산단다 그 소리가 신논현 술집까지 훅하니 덮쳐든다. 그렇게 아껴산 부모가 내 앞에 버젓이 있는데. 그런데 말이다. 이 싸가지 없는 놈은 한 시간에 이십만원 준다는 아줌마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삼십을 주겠다고 사십을 주겠다고 그렇게 팍팍 올라간 게 오십만원이었는데.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라 하기로 하였는데. 딱 한 시간 더 하고는 돈낭비 마시라고 딴 사람 구하시라, 그냥 콱 나오고야 말았구나. 건방진 그 녀석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겨댄 모양인데 그건 그가 잘난맛에 사는 부잣집 똘똘이고 전달 첫 수업부터 내가 제 자존심을 아작아작 분질러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좀처럼 오만한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는데 누군가는 그것이 동족혐오라고 하였다. 운이 좋아 나는 서른일곱에 너는 열댓살에 만났으니 나는 너의 척추를 하나하나 뜯어 맛본 뒤에 말끔히 재조립해 박아둘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만난 건 우연일 뿐이지만 네가 부자로 태어났고 나는 그렇지 못한 것 역시 우연일 뿐이니 나는 나의 유리함을 교육적으로 휘두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사실 글쓰기 과외는 지루하고 따분한 생각 속에서 대신 허우적거리는 일이라 교사를 괴롭게 한다. 약속한 한 달을 손꼽아 기다리다 못 하겠다 못박은 건 그래서였다. 공들인 글 한 편에 몇만원을 벌면서도 시간당 몇십씩 꽂아주는 수업을 견디지 못하는 이 모난 성격이 통곡스럽다면 통곡스러운 게 아닐까. 대학시절 월 오십받던 과외를 공짜로 바꿔주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대신 한 것도 모두 이 못난 성격 탓이다. 그렇게 애써 번 돈을 쓸데없이 쓰는 것도 모두 이 가난한 성정 때문이다. 아이야 하늘아 나는 정말 평생을 초라해야 하는 걸까. 갑자기 창밖에서 장대비 쏟아지고 나는 불현듯 통곡하는 사람을 본 일이 있단 걸 깨닫는다. 장대비 쏟아지던 그 산길에서 건장한 사내가 엉엉엉 울어댔다. 엄마가 죽고 친구가 죽고 키우던 개까지 모두 다 죽었다고 촌스럽게 울부짖던 그 앞에서 나는 나 대신 들어줄 사람을 구하려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통곡은 말이다. 위로가 무력할 만큼의 슬픔 뒤에나 오는 거라고 나는 그때서야 그걸 알았구나. 도저히 그런 건 겪고 싶지 않아서 각자의 고난은 각자가 감당하자 그렇게 말하고는 스팸 하나와 후르츠칵테일을 내어두고 도망친 게 나다. 아이야 하늘아 그러니까 통곡한 적 없는 삶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통조림 두개를 통곡하는 인간 앞에 내어두고서 헐레벌떡 도망칠 수 있는 것도 통곡한 적 없어서가 아니더냐. 그가 죽지는 않았을까 어딘가 살아있을까 그딴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나는 한 잔에 이만원이나 하는 술을 다시 또 주문하고 말았다. 그러고보면 다행이다. 나는 비싼 술을 좋아해서 여적 알코올중독에 걸리지 못했다. 나는 가난하여 술독에 빠져죽을 수가 없다. 내가 가진 모든 슬픔을 더해도 통곡스러움에 미치지 못한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소박한 고민과 즐거움들이 통조림 안에 든 이온물질처럼 나의 몰락을 막고 있다. 고작 14만원이 아까워서 나는 모르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장원을 빼앗아 차지하고 통곡하는 빗속을 홀로 걸어 나의 친애하는 집으로 돌아왔구나.


2022. 7

김성호

매거진의 이전글이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