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에 소주값 날린 날

단상

by 김성호

스물너덧쯤 되었을까.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영화 이야기에 한창이다. 액션 끝내주더라. 진짜 전투기 탄 것 같았어. 실제로 전투기 띄워서 촬영했대. 어쩐지 진짜같더라. 그러다 나온 한 마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아직 공격당한 것도 아닌데 미국 전투기가 다른 나라를 폭격하는 거. 그래도 거기서 핵무기 만든다잖아. 아무리 그래도 아직 당한 것도 아닌데 남의 나라를 맘대로 폭격해도 되나.


어디서 <탑건: 매버릭>얘기가 나올라치면 눈감고 귀닫았던 나인데 이번만큼은 고개가 확 돌아갔다. 온통 뇌빠진 소리나 듣다가 모처럼 영화의 허술한 맥을 탁-하니 짚어내는 평을 들었으니 아니 그럴까. 듣자하니 남자는 미국 전투기가 외국 핵시설을 선제폭격한 게 문제라 하고 여자는 어찌됐든 위협이 되는 시설이니 괜찮단 주장이다. 이 뿌리깊은 논쟁은 기실 한반도와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영변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타격이 펜타곤에서 수십차례나 논의돼왔기에 그렇고, 윤석열 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을 직접 언급해 논란을 일으킨 전례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놀라운 건 미국의 선제타격론을 그대로 반영한 이 영화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동안 내포된 문제를 지적하는 평론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드물게 놀라운 식견을 보이는 젊은이를 만났으니 내가 어찌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겠나. 그래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는데, 주장의 선명성에 비해 근거가 박약한 얘기들만 오가서 감질이 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청춘들의 대화에 개입하고 말았던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미국이 어느 나라를 선제타격할 경우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할 건 국제법상 개별적 자위권이 언급되는 유엔헌장 제51조다. 이 조항엔 두 가지 재밌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유엔 가입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했음을 전제로 한다는 명시된 단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조항 자체가 자위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당사국의 선전포고가 있었을 경우를 전제하고 있단 점이다. 즉 영화 속 탑건네 나라가 직접 타격을 받지 않은 게 분명하다는 점, 선전포고도 없이 남의 나라에 미사일을 쏜 뒤 방어를 위해 나온 유인전투기까지 격추해가며 시설물을 폭격했다는 점에 비추어 <탑건: 매버릭>은 국제법상 범죄행위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뭐 아무도 안 하는 것 같긴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됐든 나는 이를 포함한 몇개의 주요 정보를 톰 크루즈가 남의 나라 폭격하듯 둘 사이에 떨구어 놓고 알아서 터지기만 기대하였다. 그런데 웬걸, 둘의 토론은 거기서 멈추었고 나의 재미도 그쯤에서 종료되고 말았다. 골이 빈 게 분명한 여자아이는 웬 꼰대가 끼여들어 헛소리나 지껄이냐는 경악스런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못다 먹은 음료나 슬슬 섞어댈 뿐이었다. 그런데 또 웬걸, 뭘 좀 아는 사내아이가 <슈렉2>에 나오는 고양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아예 내 자리로 옮겨와서 과연 그렇다며 공감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는 양키놈들이 한국 관객을 빙다리핫바지로 보는 것이라며 열변을 토하다가는 아예 그들 자리와 내 자리를 붙여놓고 근래에 본 다른 영화들까지 떠들기 시작했다. 러우 전쟁에선 러시아를 적극 비난하면서도 <탑건: 매버릭>에선 전투기 액션신이나 칭찬하는 한심한 작자들만 보다가 이토록 괜찮은 청년을 만나니 나 역시 아침에 못 비운 대장까지 후련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커플의 앞으로 개당 무려 2만원이 넘는 와플 한 접시를 주문해주기까지 하였다. 생각보다 열렬한 그의 반응이 부담스러워질 즈음이 되어 나는 그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어떠한지 의견을 물었는데 그는 도리어 나를 붙들고는 혹시 평론은 읽느냐고 묻더니 나와 생각을 꼭 같이하는 평론가가 있다며 직접 기사를 검색하여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애독자를 또 한 명 확인하고는 차마 내가 누구인질 밝히지 못하고 도망치듯 카페를 나오고야 말았다. 거 왜 자기가 알아서 체크하고는 자기랑 꼭 비슷하게 나왔다고 좋아들 하는 MBTI툴의 순환모순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생각할 인간이란 나랑 내 글을 찾아읽는 소수의 놈들 말고는 몇 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괜히 국밥에 소주값만 날려먹은 이야기.



2022. 07

김성호

매거진의 이전글자기소개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