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자세가 주는 인상이 있다

단상

by 김성호

정자세가 주는 인상이 있다. 그중에서도 '차려' 자세는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제식의 기본이며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부자연스런 자세 가운데 하나인 차렷자세는 분위기를 단박에 경직시켜버린다. 차렷자세는 자세를 취하는 이가 속한 공간을 공적인 무엇으로 뒤바꿔놓는다. 직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물, 그 중에서도 가장 고등한 생명체인 인간이 우주의 본질에 반하는 부동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이 차렷자세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기에 차렷자세를 반인간적인 집단, 그러니까 군대에서 발명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윤진미의 1991년 작 '자아 기념품'은 차렷자세가 가진 힘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다. 아시아계 캐나다인인 작가는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캐나다의 여러 명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엽서 형식으로 인화된 사진에서 작가는 홀로, 또 여럿 가운데 차렷자세로 서 있다. 그 자세 하나 때문에 사진은 이색적인 인상을 남긴다. 관광목적의 여행에서 남겨진 기념사진일 수 있는 것이 묘하게도 공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다. 사진은 작가가 엽서 한 켠에 적어둔 "우리도 이 땅의 주인입니다"라는 문구와 어우러져 의미를 발한다. 동양인의 외모를 지닌 탓에 캐나다 시민의 정체성을 가졌음에도 이방인으로 치부되는 동양계 캐나다인의 정체성, 그 기묘한 위상에 대한 인식이며 저항의식이 고스란히 표출되는 것이다. 사진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나의 세계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많은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나랏법 없는 곳에서 마주했던 그 낯선 폭력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던가를 말이다.


사진의 대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제 작업의 목표 중 하나로 보는 이가 2분 동안 머무르는 작품을 이야기했다. 하나의 사진 안에 담긴 이야기가 보는 이를 2분 동안만 잡아둘 수 있다면 그 작업은 성공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노원희의 1982년 작 '나무'는 성공한 작품이다.


가로만 432cm의 유채 작품엔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바삐 걷는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앙상한 나무들 위에는 십여 개의 스피커가 매달려 무언가 바쁘게 떠드는 인상을 준다. 재밌는 건 스피커가 모두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그중 어느 하나도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려진 구식 스피커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 그 시대가 겨우 막을 내린 시기에 이 작품이 태어났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림 한 폭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그림도 사진과 마찬가지로 2분이란 시간에 성패가 갈린다면 노원희의 이 작품은 성공했다 해도 좋겠다.


가나아트컬렉션 기증작으로 구성한 '[허]스토리 리뷰'전은 수는 많지 않지만 충실하고 분명한 작품들로 꾸려졌다. 개중에선 발길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감상할 만한 작품도 여럿이다. 서울 안에 그런 작품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래도 매력 있는 공간이란 건 분명하다.


비록 자주 실망스런 전시를 연다고는 하지만 무료란 점과 상설전의 품격만큼은 이 미술관의 분명한 장점이다. 천경자전과 가나아트컬렉션 기증작은 서울의 자랑 중 하나로 꼽아도 될 정도다. 이조차 없었다면 서울을 어떻게 문화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었겠는가.



2022. 7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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