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너그러운 것

단상

by 김성호

어차피 왜곡될 게 기억이다. 사물은 사물대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실제 그대로 존재하는지는 믿음의 영역이다. 인간이 무엇을 인지한다는 건 감각을 통해서다. 보고 듣고 맡고 느껴서인데 그 과정에서 소실되는 정보가 받아들인 것과 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지된 결과물이란 아무리 잘 봐주어도 코끼리 다리 만지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볼 때는 핑크색인 것도 실은 빛에 대한 반응이고 파장일 뿐이니 본질은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도 결국은 매개가 필요하다. 가만보면 그 매개도 모두 감각에 의존한다. 냄새로 기억되는 사람, 시각정보로 그려지는 장면, 소리로 떠오르는 순간, 기억을 불러오는 건 죄다 그런 감각들이다. 그렇다면 기억은 처음부터 소실되었고 완전히 소실되어갈 것이 분명한 상태에 불과하다.


국립현대미술관 '나너의 기억'전은 기억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얽혀든 전시다. 아무렇게나 먼저 만들어졌고 뒤에 테마를 정한 게 분명한 13점의 작품이 어차피 모두에게 불완전하게 기억될 전시를 이뤘다.


나는 많은 것을 기억한다. 어쩌면 불필요한 기억을 너무 많이 가져 버거울 때도 있다. 어느 비오던 날 느낀 감촉과 초저녁 빛을 받던 모습과 문득 차오르는 향기들로 나는 그것들을 떠올린다. 스러지는 태양이 내는 그리움의 빛깔과 짙어지다 묽어지는 슬픔의 소리들도 여적 기억한다. 기억은 가끔 선명하고 자주 허술하여 잔인하기보단 너그러움에 가까운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자 한다.



2022.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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