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독립문이야?" 아이의 물음에 스포티한 선글라스를 녹색 모자 위로 걸친 아버지가 답한다. "그래 저게 독립문이야". 그쯤에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아이는 자비가 없다. "왜 독립문이야?"
문제는 항상 그렇게 태어난다.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지 못하는 게 시시때때로 눈앞에 떨어진다. 아버지는 후회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이게 뭐냐 저게 뭐냐 묻는 아들놈을 데리고 나왔으면 독립문이 뭔지는 한 번쯤 검색했어야 했다고. 하지만 그는 피로했고 대충 한나절 걷다가는 돈까스를 사주고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잠시 동안 고민했다. 대충 얼버무릴까, 모른다고 털어놓을까, 아들아 너는 왜 독립문이라고 생각하니 하고 재작년까진 잘 먹히던 수를 써볼까 하고서. 그의 고민이 끝나기 전 아내가 입을 열었다. "땡땡아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에 독립한 기념으로 세워서 독립문이야."
이쯤에서 묻는다. 여기서 더 불행한 건 누구인가. 무력하게 이들의 대화를 듣는 나인가, 헛된 정보를 가장 깊은 곳에 입력하는 꼬맹이인가, 제 자식을 무식쟁이로 키우는 아줌마인가. 이들에게 독립문이 무엇인지 일러줄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그냥 계속 지루한 소설책만 들출 뿐이다.
전국 팔도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짓밟힌 유적이 셀 수 없이 많다. 도성 코앞에 있는 독립문이야 일제가 기침만 해도 허물어졌을 부실한 물건이니 박살이 나도 진즉 났어야 했다. 그런데 일제는 이 문을 보강까지 해가며 애지중지 다뤘다. 문 이름도, 현판도 처음 그대로 독립문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이 독립이 일제에의 독립이 아니란 것쯤은 명확하지 않은가.
일제강점기 이후에 세웠대도 의문이 남는다. 강점기 이후 한국은 미국식 건축양식에 말 그대로 빠져 있었는데 굳이 철지난 유럽식 기념물을 짓는단 건 여러모로 어색하다. 이 시기 무엇을 지었다면 '자유의 여신상'식 동상이나 기념탑이 되었을 확률이 훨씬 높지 않았겠나.
말하자면 독립문은 모멸과 단절의 상징이다. 일제가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패퇴시키고 동아시아 패권에 성큼 다가선 시기, 독립협회가 영은문 자리에 프랑스 개선문을 본따 새 문을 세우니 그것이 독립문이다. 청나라 사신을 맞던 자리에 새 문을 올린 것부터가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함인데, 조선왕조가 청의 식민지도 아니요 이미 국격을 황제의 나라로 칭한 시점이기에 요상하기 짝이 없다. 건립의 주체도 한심하다. 다음 주인이 유럽이냐 미국이냐 일본이냐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인간들이 찐따왕을 설득해 세운 것이 이 문이다. 시급을 따지는 정국, 돈 한 푼이 소중한 나라에서 성금까지 모아가며 이딴 짓을 하였다니 역사를 들추다 보면 열불이 아니 날 수 없다. 정초식 자리에서 연설을 한 이는 그 유명한 이완용이다. 독립문 건립에 거금을 투척한 그는 수천 민중이 운집한 가운데 우리의 나아갈 길이 미국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후 뜻을 꺾어 일제의 개가 되었지만 한국의 오늘을 보고 있자면 그가 나름의 선견을 지녔단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무튼 제 이익에만 관심 있는 오합지졸들이 힘빠진 청 대신 힘 있는 외세를 섬기겠다 고민한 결과물이 독립문인 것이다. 그러니 여기 담긴 독립의 뜻은 오늘의 시민들이 비추어 받들 것이 못된다.
독립문은 황당한 건축취지와 엉성한 생김 만큼 문화적 가치 또한 비천하다. 우리의 역사는 독립문을 허물지도, 그 자리에 새 기념물을 짓지도, 가치 있는 해석을 붙이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독립문을 지나는 사람들은 태반이 그 독립을 일제에 대한 것이라고 오해한다. 독립문 앞에 오래 앉아 있자면 오늘처럼 무식한 아줌마가 열성적으로 제 아이를 가르치는 꼴을 볼 수 있다. 독립문 인근 카페며 식당 중엔 독립문을 그려 내건 곳까지 있을 정도다. 참담하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지식이, 역사가, 교육이 품지 못한 것이 분명히 있지는 않은가. 당대에도 수천 수만의 애국시민이 독립문에 환호했다. 일제는 그 모습을 한심하다 웃었겠으나, 독립문 앞에서 누군가는 독립의 결기를 다졌으리라. 독립 두 글자에 담긴 뜻은 그 글자가 만들어지고부터 늘 같았으므로, 35년 간 제 땅 잃은 민중이 이 두 글자를 볼 곳이 여기밖에 없었으므로, 홀로 서고야 말겠다는 열망 역시 언제고 끓었을 테다. 지식이, 역사가, 교육이 해내지 못한 걸 길조차 빼앗긴 처량한 문이 맡아온 시간이 어찌나 길었을까 생각해보니 나의 오만이 오늘 또 지나쳤구나.
2022. 7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