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도시 빛나는 길 깔끔한 성곽 열심히 자기관리 하는 사람들, 그 사이를 걷는데 내 고향 서울의 느낌이 안 나는 건 왜일까. 내가 사는 도시도 사회도 문명도 거세게 앞으로만 나아가는데 가만히 있어서는 뒤처지는 게 아닌지 어떤지 그런 불안만 솔솔. 그러고보면 지구도 어마무시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또 스스로를 비틀어 돌고 돌고 돌아가고, 그를 껴안은 우주는 태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제 처음과 멀어지고만 있는 것이다. 그간 각질처럼 떨궈진 것이 얼마나 많고 저마다의 사연은 어찌나 절절할 지를 가만히 생각해보기만 해도 아무렇게나 아연해지고 만다. 전속 항진하는 나의 세계가 버리고 지나온 아까운 것들이 대체 얼마나 될 지 짚어보다가 한양 도성 둘러친 사방 네 산 중에서도 단연 역동적인 인왕산의 변모가 놀라워져 아- 하고 감탄사를 뱉어낸다. 변신하지 않고 분발하지 않으면 아무리 높고 귀한 정신조차 짓밟히는 세상, 이 산만큼은 제 허리를 뚫고 쓸모없는 돌덩이와 눈부신 빛조각을 기꺼이 껴안았구나. 패배와 단절의 상징 독립문과 무력함의 역사가 깃든 인왕산 사이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도시의 오늘을 본다. 과거나 다름없는 현재 위에서 미래만 바라보는 게 젊음이라면 나도 아직은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이다. 내 모든 실패와 절망들을 그러모아도 인왕산이 겪고 견딘 것의 일리도 되지 못할 테니.
2022. 7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