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작별하길 바란다

단상

by 김성호

준경이형 결혼식에 갔다가 <작별하지 않는다>와 이별하였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던 것을 사진 찍으러 나간다뭐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탓일 테다. 표지에 도서관 딱지가 붙었고 사이엔 책갈피로 명함을 끼워둬서 혹여 돌아오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가는 그냥 팍 접어두기로 마음먹었다. 기대가 높을 수록 실망도 깊어지는데 내게 여분의 희망이 없는 탓이다.


작별은 떨어짐을 예비하는 것이라 이별보다는 늘 낫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언제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니, 오늘도 몇몇과 즐거이 작별한 참이었다. 그러나 이별은 박하다. 예비할 시간도 없이 불현듯 떼어두고 감당하도록 한다. 잔인하고 서글퍼서 가끔은 미운 마음까지 든다.


말하자면 한강의 소설책과 나는 작별 아닌 이별을 하였다. 다음을 기약하지 못했고 잃어서 찾을 수 없다. 가는 데 한시간 오는 데 한시간씩 돌아가는 길에 반납하면 되었을 걸 어디에 두었는지 좀처럼 떠올리지 못했다. 서울 서남쪽 작은 도서관의 책을 편도로 한 시간이 훌쩍 넘는 동남쪽 동네에 두고 왔으니 아마도 영영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주인공은 폭설 쏟아진 제주 깊은 마을을 혼자서 헤맸다. 목공일을 하다 손가락이 절단돼 입원한 친구 인선의 부탁 때문이었다. 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고 이제 막 정신이 든 인선이 주인공에게 말한다. 제주에 있는 집으로 가서 기르는 새 아마에게 물을 달라고 말이다. 따로 부탁할 사람이 없다며, 새란 것은 물을 먹지 못하면 금세 죽고야 마니 오늘을 넘겨선 안 된다고, 간절하고 진지하게 도움을 구한다.


딱 한 번 본 게 전부인 아마를 구하기 위하여 주인공은 험한 날씨를 뚫고 외딴 마을로 향한다. 폭설 속에 휴대폰도 잃었고 넘어져서 머리에선 핏물까지 흐르는데, 저 멀리 목공소 불빛 따라 겨우 찾은 인선의 집이었다. 주인공은 새장을 찾아 그 안을 들여다본다. 아마는 새장 바닥에서 싸늘하게 식은 채로 누워있다. 늦어버린 것이다. 죽어버린 것이다. 이별당한 것이다.


주인공은 친구의 새를 어떻게 할 지 고민한다. 하얀 천을 구해다가 새였던 것의 몸을 감싸들고 작은 병에 옮겨 담는다. 인선이라면 어디에 묻었을까를 헤아리며 가만히 주변을 살핀다.


절반쯤 읽은 소설에는 나와 준경이형과 재준이가 그렇듯 아주 드문드문 연락하는 깊은 관계가 나온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가구를 만드는 친구는 손가락을 잘리고 난 뒤에야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는 제가 기르는 새에게 가서 물을 주고 오라고 요청한다. 부탁을 받은 친구는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거절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멀리 찾아와서 죽은 새를 안아든다. 그는 이별을 작별로 끌어올리는 예식을 혼자서, 그러나 진지하게 감당하려 한다. 남의 죽음에 박한 시대에 한 번 본 짐승의 죽음조차 무겁게 다뤄지는 소설이라니 어딘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강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러나 이따금씩 그녀의 책을 찾아 읽는다. 좌충우돌하는 나의 세계에도 내 자상한 아버지가 남긴 게 없지 않듯, 한강의 세계에도 한승원이 새긴 것이 어딘가 있지는 않을까 눈을 닦고 찾아보는 것이다. 자주 지루하고 별 흥미가 생기지 않던 그녀의 소설은 강제로 이별한 뒤에야 특별한 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관계가 나와 잃어버린 도서관책 사이에서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건 작별과 이별의 차이를 염두에 둔 말일까, 그저 헤어지지 않는다는 뜻일까. 나는 어쩌면 그를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나는 모든 관계가 잘 작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2. 7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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