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취중잡설

단상

by 김성호

술 싫어하는 인간치고 재밌는 놈을 못봤다 이건 혐오발언이래서 술 좋아하는 놈들은 재밌다 이건 또 틀린 말이라서 재밌는 놈은 술 좋아하는 애들 중에만 있다고 하였더니 또 혐오발언이라고. 그렇다면 너는 술을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 하였더니 엉엉엉. 그런 날이 있었더랬지.


따지자면 술은 해로운 것이다. 건강에 안 좋고 두뇌에도 안 좋고 일단 마시고 난 뒤에는 정상상태로 돌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마시다보면 안주가 당기게 마련인데 매일 먹고 마시고 더 많이 먹고 마시려다보면 가뜩이나 얇은 주머니 사정이 더욱 얇아지게 마련이다.


그뿐인가. 몸은 말라지는데 배만 볼록 나오고 손 발은 차가워지며 피부에도 두드러기가 나니 불쾌감 때문에라도 술을 더 자주 원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못된 액체를 찾기가 힘들다.


술맛까지 알면 점입가경이다. 술이 술을 부르고 술병만 봐도 입술이 말라오며 해장을 하러 갔다가도 술이 찾아지는 요상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쯤되면 집에 술병을 잔뜩 쌓아두고 술에 다가서려는 나와 그 걸 막는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게 일상이다. 자기를 극복하는 즐거움과 파괴하는 즐거움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괴로워하는 일상을 감내하는 게 술쟁이의 숙명인 것이다. 말하자면 술쟁이는 술을 사랑하여 인생도 살아지게 된다. 내 가장 괴로울 때 친구가 된 것도 적이 된 것도 모두 술이었던 건 자연스런 귀결이라 하겠다.


먹고 싶은 만큼 먹지 못하는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기까지 하는 이가 도처에 널린 세상이다. 모르면 모를까 알 만큼 아는 자가 술을 입에 달고 사니 죄스러울 때가 많다. 귀한 곡식을 발효하고 쪄서 정제한 뒤 술로 털어 마셔버리는데 이보다 비효율적인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술은 사치에 닿고 음주는 무절제와 이어지니 술에 미친 인간치고 의로움과 선함을 동시에 가진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술이 백해무익이란 말은 절반만 옳다. 술의 가장 좋은 점은 술이 인간을 비로소 솔직하게 한다는 거다. 가벼운 이는 들뜨고 무거운 이는 차분해지는데 어찌됐든 필요한 만큼 무겁고 차분해지는 것이다. 쓸모없는 인간이야 술을 마실 수록 상종 못할 것이 되고야 말지만 그것 역시 진면목이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다. 본성이 추악한 자면 술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될 것이요 본성이 드러낼 만하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대개 술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은 술을 마신 뒤가 마시기 전보다 나을 때가 많다. 상처도 결핍도 적당히 메워지고 불안이며 경계 역시 적절히 치워지니 남는 공력을 즐기고 나누는 데 들이는 덕이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 술잔을 나눌 만 한 데 내가 함께 한 잔 하고 싶은 것도 꼭 그런 이들이다. 그러고보면 옛 영웅들이 술로 인간을 판별하고 나누려 한 것이 아예 허튼 수작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상은 취해서 끄적거린 잡설이므로 읽을 것이 못된다만 나는 취했으므로 그 말을 가장 나중에 적기로 하였다. 그럼 멋지고 재미난 이들이여, 오늘도 우리 술거워하자!



2022.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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