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판단하고 판단받기

단상

by 김성호

유달산 일등바위 표지석에 기대앉아 옛 사람을 생각한다.

오래 전 충무공이 이 산 아래 내다봬는 고하도에 터를 잡고 조선을 지킬 방략들을 고민했다. 유달산 노적봉에 거적더미를 얹어두고 군량미로 위장한 건 두고두고 이 산의 자랑이 되었다. 공이 직접 이 산을 오르지는 않았으나 명량해전 이후 반년 남짓 이 산을 바라보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백년을 가로질러 그의 시선을 짐작하는 일이 살아 있는 녀석들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나는 이순신을 존경한다. 그야말로 모든 것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저 스스로에게까지도 가차없던 평가와 끝없이 쉬지 않던 판단들을 나는 애정한다. 그 하나하나에 깃든 자만이며, 그 자만들과 치열하게 싸워내던 의지며, 그 끝에서 마침내 얻어낸 승리며, 그 모두를 가능케 했던 실력까지를, 나는 진심으로 좋아한다.


모두가 그를 깔아뭉갤 때조차 꺾은 적 없는 의기와 모두가 그를 존중할 때조차 거침없이 내려쳤던 채찍질은 결국 사내가 의지할 것도 맞설 것도 극복할 것도 오롯이 자기자신 뿐임을 명확히 한다. 이순신은 그래서 거인이며 가장 작은 인간이기도 했다. 끝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판단하며 스스로를 경계한 그는 인간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스란히 내보인다. 요컨대 판단하고 평가하고 극복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남과 나, 나아가 세상 모두에게 거침없이 그래야만 한다.


시시한 이들은 판단받고 판단하기를 두려워한다. 이는 예와도 의와도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그리하여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게 대단한 미덕처럼 여겨지는 오늘의 세상에선 그를 예의로 여기는 이가 적지 않다. 내가 애정하고 존경하는 이들 가운데 그런 것을 미덕으로 삼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므로 신경쓰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시시껄렁한 이들과 교우하다보면 이따금씩 문제가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갈 길은 분명하다. 겁먹지 말고 주저하지도 말고 거듭해서 나아가야만 한다. 세상에는 온 정신을 다 쏟아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널려 있으니.



2022.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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