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의 계절, 전주시 방문. 전주는 어머니의 고향이지만 내겐 여지껏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전북대 로스쿨 다니던 친구놈들 탓에 한두 번 와본 적 있었으나 그뿐.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갔던 축구팀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을 보러 또 몇 번 왔었고. 그때마다 한옥마을이며 유명하다는 맛집들이며 여기저기 돌아보곤 했는데 마음에 찬 적은 없다시피 하였다. 이후로 전주를 찾은 건 영화제 때문이었다. 부실한 경력에도 평론가 대접을 해준 게 고마워서 나름대로 좋은 글을 쓰자고 그렇게나 노력했었다. 죽어버린 작가의 소설과 철 지난 흑백영화를 보고서 나의 길을 결심했듯이 내 글도 필요한 누구에게 제 때 가서 닿기를 그렇게 소망하고 기대하였다. 전주를 떠올릴 때 고단하지만 즐거운 추억도 옅게나마 떠오르는 건 이 기억 덕분일지도. 그러고보면 전주는 영화를 넘어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책으로도 축제를 할 수 있다며 열기 시작한 전주독서대전에서 나는 지난해 김승수 시장으로부터 상장이며 상품까지 받았다. 그 시장님이 날라가셔서 독서대전도 어찌될 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읽던 책을 안 읽게 되지도 안 읽던 책을 읽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주시는 내 기자경력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를 남겨주었다. 덕진구 여의동 공익요원이 주민센터의 엉망진창 행정을 고발했다가 도리어 고소당한 사건이었다. 이때 나는 국가기관장이 직원을 고소한 사건을 여럿 다루는 중이었는데 사건들이 하나같이 황당무계했다. 이 사건은 기사화된 뒤 제법 화제가 됐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해결에 이르렀다. 솜방망이라도 관련자 징계가 있었고 해당 요원에 대한 검찰 수사도 무혐의로 일단락됐다. 법이 소송을 막아주지 못했고 주민센터에선 따돌림까지 받아 근무지까지 옮겨야 했지만 어찌됐든 승리는 승리인 것이라고 그렇게 자그마한 자축을 했다. 여러모로 전주는 내게 아예 낯선 도시는 아니다. 딱히 인연이 없는 듯해도 위와 같은 연들로 전주에 오면 저를 찾아달라는 이들이 적지 않게 생겼다. 그러고보면 이제 전주와는 아주 인연이 없진 않구나.
2022. 8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