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논란으로 밀려나는 작곡가를 본다. 아주 오래 전부터 표절의혹이 있었던 그이지만 어째서인지 십수년이 지나서야 논란이 된다. 창작의 재능이며 도덕성과는 별개로 감각과 취향만은 일품인 그이기에 언제고 다시 음악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아주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평론가적 자질도 책임의식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어째서인지 인기가 높은 그는 종종 진면목이 드러날 법한 위기들을 큰 탈 없이 넘겨 왔다.
어느 감독은 온통 여기저기서 가져온 장면들을 모아 영화를 만들지만 사람들은 늘 환호를 보낸다. 한 장면이 두 장면이 되고 한 편이 두 편이 되는 문제의 영화들은 문제가 안 되면 창작이고 문제가 되면 오마주로 불린다. 어디 그들 뿐이랴.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귀한 자리를 얻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개중엔 아주 오랫동안 못마땅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망했으면 좋겠다고 저주하고, 감출 수 없는 질투를 품었던 이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일 뿐 그들의 성공이 내 실패의 이유는 되지 못함을 알게 된다. 가만히 그들의 작업을 따르다보면 이따금씩은 그들의 조급함이며 불안함이 읽힐 때가 있다. 제 부족한 역량을 감추려는 발버둥이 무리를 불러오고 그래서 실패하고 마는 순간들을 발견한다. 그 순간 내게 이는 감정이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에 가깝단 건 다행한 일이다. 그들의 실패가 나의 만족이 되지 않음에 안도한다.
나는 수국을 좋아한다. 물 많이 먹는 탐스러운 여름 꽃이 실은 꽃이 아니란 걸 알고부터 마음이 더욱 쏠리곤 한다. 흔히 사람들이 수국꽃으로 생각하는 건 꽃이 아닌 꽃받침이다. 그러니까 꽃처럼 보이는 이파리다. 진짜 꽃은 화려한 꽃받침 아래서 남몰래 피고 진다. 너덧장 꽃잎에 수술 10개짜리 꽃이지만 널찍한 받침에 가려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이 드물다. 본래 자연종인 산수국은 보잘 것 없는 꽃 대신 벌과 나비를 유인하려 이파리를 화려하게 꾸몄다. 일제가 이 꽃을 가져가 더 큼직하게 개량한 게 우리가 아는 뭉탱이 왜놈수국이다. 요컨대 수국꽃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도 이 가짜 꽃이다. 어쩌면 가짜여서고 가짜여서 빚을 수 있었던 예쁨이 가상해서다. 진짜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수국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뽑아다 썼나. 땅 기운을 따라 붉게도 푸르게도 변하는 꽃받침을 보고 있자면 수국의 간절함이 어느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그 간절함이 얼마나 짠한 지 나는 그만 수국을 애정하고 만다.
말하자면 내가 표절하는 작곡가와 비겁한 평론가와 베껴대는 영화감독과 온갖 진짜처럼 행세하는 짝퉁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와 꼭 같다. 나는 수국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려 한다. 이따금은 화가 치밀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얼마나 불안할까를 생각한다. 그들의 영화에서, 글에서, 방송에서 그들의 불안이 읽힐 때가 적지 않다. 사람들의 환호가 도리어 불안의 이유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재주보다 높이 오른 그들의 오늘이 짠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렇다. 너의 성공이 나의 불행일 순 없는 것이다. 너의 실패도 나의 기쁨일 순 없는 것이다. 너의 꽃이며 꽃을 가장한 이파리며 그밖의 온갖 것을 제 모습 그대로 보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것이다.
2022. 8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