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에 부쳐

2014 브라질 월드컵, 예고된 실패

by 김성호

사마천이 쓴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은 한나라의 대장군으로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통일에 지대한 공을 세운 한신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한신은 젊어 항량과 항우를 섬겼으나 중용되지 못하자 한나라로 귀의하고 마침내 대장군에 이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한신과 관련해서는 불우하던 젊은 시절에 시비를 걸어오는 무뢰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과하지욕(誇下之辱)의 고사가 생겼다거나 배수진을 통해 불리한 전황을 일거에 뒤집은 정형전투의 일화라거나 괴철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고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겼다거나 하는 유명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오늘은 한신이 어떻게 한나라의 대장군이 되었는지 그 충격적이었던 데뷔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한신의 등용이 2014년 5월 8일 오늘 발표된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를 바라보는 유의미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장군의 지위에 오르기 전의 한신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다.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만큼 가난하였으나 늘 큰 칼을 차고 다녔던 그는 원대한 포부를 지녔음에도 재능을 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던 불운한 인물이었다. 그가 군법을 어긴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마침 그 자리를 지나가던 하후영이 한신의 탄식을 듣고 그를 살려주었던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만약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사마천의 역사서는 조금쯤 얇아졌을 것이고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역사가 꽤나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날 이후 하후영은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승상 소하에게 추천하였고 소하 역시 한신의 재능을 인정하였다. 유방의 군대가 파촉으로 물러날 때 여전히 중용되지 못했던 한신이 달아나자 직접 그를 잡아와 유방에게 천거한 것도 소하였다. 그는 유방에게 한신을 반드시 잡아두어야 하며 그를 쓰려면 대장군직을 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서 소하가 한신에 대해 '장군들이 전쟁에 가는 건 흔한 일이나 한신만한 자는 국사무쌍이 되리라'고 평가한 것은 유명하다.


유방은 소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한신은 곧 한나라의 군권을 총괄하는 대장군이 되었다. 결과를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흔히 이는 인재를 알아본 소하의 안목과 그를 받아들인 유방의 배포, 기대를 현실화시킨 한신의 능력이 어우러진 미담으로 남아있지만 사실 한신의 등용은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었고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개 하사가 총리 추천으로 육군참모총장이 된 꼴이니 낙하산도 이런 낙하산이 없을 것이다. 어찌 문제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평소 평이 좋은 인물도 아니었던 한신이 일거에 대장군이 되었음에도 이후 기록에는 그에 대한 반발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한신 스스로가 전장에서 실력을 증명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방과 소하가 부하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지도자였고 그들이 내부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나아가 설득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유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한신은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참전한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한나라의 통일을 이끌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한신의 기용을 특혜와 낙하산의 예시로써가 아니라 탁월한 안목과 결단력에서 비롯된 절묘한 용인술의 사례로 기억한다.


8일 오전 11시 홍명보 감독은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풋살구장에서 23명의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홍명보 감독이 밝힌 선발기준은 경험이었다. "우리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량에 있는 선수들과 경기해야 하는데 거기 있어서 경험 부분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언급한 것이다. 특혜논란 등 선발에 의문이 제기되었던 박주영을 최종 발탁한 후 가해질 비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여겨진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시작으로 코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등 외국인 감독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을 때마다 축구협회가 선수기용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외압 의혹이 제기되었음을 축구팬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11년 12월,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언론송년인터뷰자리에서 '부끄러운 한국 축구의 자화상이지만 외압은 존재했다. 선수 이름을 밝힐 순 없다. 협회 수뇌부에서 한 선수의 대표팀 발탁을 요청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지만 거리가 멀었다'라며 그간의 외압 의혹을 직접 인정한 사실까지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이는 지켜져야만 한다. 이는 대표팀의 감독이 성적은 물론 경기내용과 심지어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까지 대표팀과 관련한 모든 부분에서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책임을 지기에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선수 선발은 감독의 가장 기본적이자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권한이다. "우리 대표팀을 홍명보호라고 불러주시는 것에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이 시점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어려운 시기에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 국민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언급한 홍명보 감독의 말 역시 이로부터 비롯된 것일 테다.


그러나 최종 엔트리를 보면 여전한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박주영과 소속팀에서 출전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 혹은 경기에 나와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이 K리그 클래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을 제치고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소위 '홍명보의 아이들'도 상당수다. '올림픽 시즌 2', '으리의 엔트으리', '역시 의지인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최종 명단에 속한 K리그 선수는 6명 뿐이다. 그나마도 해외파가 없는 골키퍼 3명을 제외하면 김신욱, 이근호, 이용까지 3명 뿐이다.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가장 적은 K리거가 출전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박주영, 지동원, 이청용 등 해외파 선수들에게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면 이번 월드컵은 K리그와 K리그의 팬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회가 될 것이다.


K리그가 대표팀 선수들을 배출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J리그와 중국수퍼리그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들이 K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제치고 대표팀에 승선하는 건 이후에 유망주들이 K리그에 진출하는 것을 기피하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K리그 클럽들은 이미 지난 수년 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동국, 이명주를 비롯해 수많은 실력있는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에서 이들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들 역시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탄탄한 토양을 망치는 일이다.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증명되었듯 경험있는 선수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으며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팀에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경험이 있는 선수는 없다. 더욱이 국가대표 발탁을 통해서 쌓을 수 있는 국제대회 경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만약 소하가 경험 부족을 이유로 한신을 발탁하지 않았다면 유방의 한나라는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이동국에게는 없는 경험이 박주영에게만 있을리도 만무하고 이명주에게 없는 경험이 한국영이나 박종우, 하대성 등에게만 있을리도 없다. 경험은 이번 대표팀 선발의 기준이 결코 아니었다.


발표된 명단을 살펴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한국영(8경기), 박종우(10경기), 김창수(8경기), 황석호(3경기), 김진수(9경기), 윤석영(2경기), 김승규(5경기), 이범영(0경기)까지 여덟 명의 선수가 A매치 경험이 전무하다. 그런데 이명주는 A매치 9경기와 수많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뛰었다.


그렇다고 이들 선수들의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김창수는 리그 11경기 중 부상으로 5경기에 출장하지 못했고 총 6경기에서 2의 선발과 3번의 교체출전을 하고 있을 뿐이다. 황석호는 팀이 치른 18경기 중 부상으로 제외된 5경기를 뺀 13경기에서 4번은 선발로 8번은 교체로 출장했다. 이 두 선수의 소속팀에서의 선발출전률은 30% 내외다.


엔트리 발표 직후에 만난 어느 축구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자기랑 함께한 시간을 경험에 포함시킨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올림픽 시즌2죠, 뭐."


홍명보호가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발탁에 의문이 제기된 여러 대표팀 선수들은 과연 홍명보호의 한신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결정이 K리그, 나아가 한국축구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2014. 5. 8. 목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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