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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Jun 23. 2023

주식회사 탄생 500년... 이제 바꿀 때가 왔다

오마이뉴스 게재,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36] 일본 경제학자 미즈노 가즈오 지음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더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세상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무주택자들의 의욕을 분지른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선 휴대폰으로 주식가격을 알아보는 직장인들이 넘쳐난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에서 월급만 바라보고 사는 건 바보짓처럼 여겨질 뿐이다.


개인은 틀릴 수 있지만 시대는 틀리지 않는다.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언론 지면에선 기업이 어렵다는 말이 반복되지만 세계 주식시장은 호황을 이어간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분기마다 역대 최대실적을 경신했다는 소식도 새롭지 않다. 어마어마한 배당금이 투자자의 주머니로 굴러떨어진다.


임금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지난 수세기 동안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리했던 임금노동자는 조금씩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노동은 줄여야 할 비용이자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가계수입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보고됐다. 반대로 금융과 부동산 등의 자산이 소수 계층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는 지표도 누적되고 있다. 상황은 조금씩 악화된다.

             

▲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책 표지ⓒ 더난출판


최초의 주식회사는 어떻게 등장했을까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 경제학자 미즈노 가즈오(水野和夫) 호세이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역설한다. 무한히 확장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가 미개발지대가 없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위기에 봉착했음을 자본주의의 태생으로 돌아가 차근히 설명한다.


이 책이 특별히 매력적인 것도 이 지점 덕분이다. 주식회사는 어떻게 탄생했고, 왜 한계에 봉착했는지를 한손에 잡히도록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주식회사를 알기 전에 법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법적 책임과 권한이 부여된 단체가 법인의 출발이다. 법인이 탄생하기 이전까지 모든 권리의 주체였던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 재산이 상속됐고 이 과정에서 상속세가 발생하므로 자본의 축적에는 일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속하는 법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본은 법인의 법인격 아래 영속해서 축적되고 점차 막강한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최초의 법인은 1555년 태어났다. 영국 국왕이던 메리 1세가 모스크바대공국과의 무역독점권을 갖는 특허장을 일반에 팔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추가 증세를 하기 어려웠기에 일반에 특허를 내준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머스코비회사는 양도가 가능한 주식으로 구성됐으며 투자자에게 유한책임만 지도록 하는 현대 주식회사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는 최초의 법인으로 기록됐다.


이후 머스코비의 후배 격으로 3대 특허회사로 불린 동인도회사, 잉글랜드 은행, 남해회사는 막대한 양의 국채를 사들여 영국 국왕에게 끊임없는 자금을 공급했다. 영국의 번영이 영원하리라 믿은 이들이 특허회사에 투자했고 상당한 기간 동안 실제로 번영했다. 뻗어나갈 세상이 있는 한 특허회사들은 수익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 특허회사의 성공 이후 '자유롭게 양도 가능한 유한책임 주주'로 구성된 주식회사가 사회 전 영역을 활동무대 삼아 들어섰다. 바야흐로 주식회사의 전성기가 열린 것이다.


특허회사 이전까진 모든 권리의 주체가 인간, 혹은 한두 계약이 수명인 파트너십 형태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혁신이었다. 영속하는 법인이 권리의 주체가 돼 부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팽창의 시대가 끝나자 주식회사의 폐해도 커졌다


불특정 주주를 대상으로 하는 주식회사의 시대가 열리자 금융은 국경을 넘어섰다. 주식회사는 오로지 더 많은 투자를 위해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팽창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회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관한 윤리관도 없이 '3월에 300억 엔의 이익을 내라' 혹은 '판매 대수를 더 늘려라'라고 명령하기만 하는 경영진은 18세기에 애덤 스미스가 비판한 '부잣집 집사'이고, 20세기에 갤브레이스가 말한 '테크노스트럭처 성직자'다. 실제로 21세기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에는 몇 대에 걸쳐 부잣집 집사가 군림하고 있다. -137p


팽창이 끝나버린 시대, 주식회사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본질적으로 주주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는 기업이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 품질경영에 실패한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 의도적으로 배기가스를 조작했던 폭스바겐 사례가 대표격으로 언급된다.


미즈노 가즈오는 이익은 가져가되 책임은 유한하게 지는 경영진이 주식회사의 진정한 주인이긴 어렵다고 강조한다. 절대 주식량에선 일부만 소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순환출자를 통해 전체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재벌도 그에겐 '부잣집 집사'나 다름없다.


더 이상 진출할 곳이 마땅치 않은 21세기 세계에서 주식회사 중심의 자본주의는 나아갈 길을 잃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뿌리내린 경제불평등과 기업의 사내유보금 증가, 저임금 지속, 비정규직 확대, 실업증가 등의 문제는 주식회사가 중심이 된 경제체제의 필연적 부산물이다.


그는 팽창이 멈추고 부잣집 집사들의 '갑질' 등 부작용만 커진 주식회사를 넘어 새로운 체제를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놓는 대안은 진단만큼 매력적이진 않지만 귀기울여봄직은 하다.


양적 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미즈노 가즈오는 다시 중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이 그때와 같이 다시 '닫힌 공간'이 됐으므로,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합리적으로' 대신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익보다는 책임을, 확장보다는 존속을 목표로 하는 법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토마 피케티, 조지프 스티글리츠, 장하준과 함께 미즈노 가즈오의 주장이 저 보수적인 일본 경제계에 큰 울림을 던졌다는 건 이 시대가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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