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은 피로써 닦였다고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붕인 판시판산으로 가려면 베트남 북부 마을 사파로 가야 한다. 사파는 중국 접경지인 라오까이 인근으로, 일단 라오까이까지 기차나 슬리핑버스를 타고 간다. 시간이 맞는 열차를 구하기 어려워서 이번엔 슬리핑버스를 타기로 했다. 잠을 자며 이동까지 한다니 건강한 뚜벅이 여행자에겐 매력적인 수단이다. 어디서나 잘 자는 나는 안마의자를 몇번 써보고는 바로 꿈나라에 떨어진다.


베트남 고속도로는 극악이란 평이 많다. 왕복 팔차선에 하이패스까지 뻥뻥 뚫린 고속도로만 타본 여행자에게 어느 나라 도로가 안 그렇겠느냐만, 베트남은 정도가 심하다.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대도시가 늘어서 있어 일자로 죽 그으면 될 것 같지만 산지와 늪지가 많아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더구나 기술력 부족과 자금조달 문제로 수도 없이 사고가 터져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완공되지 못한 구간이 수두룩하다. 당 간부에게 뒷돈을 주지 않으면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소문까지 무성한 가운데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가 파이는 부실사례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무튼 그 불편은 고스란히 현실을 사는 베트남인들에게 돌아갔다. 말만 고속도로지 일차선 도로에 중앙선 침범이 잦은 구간이며, 요금소 앞에 길게 정체된 행렬을 만나는 때도 종종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한국은 경부 고속도로를 일찌감치 뚫어 나라의 토대를 다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아래 국군 공병대와 현대건설이 나서 진행한 공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어찌됐든 일정 아래 완료됐다. 공식적으로만 77명의 사망자를 냈고 군데군데 부실한 구간이 나왔지만 이토록 빠르게 공사를 완료한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한 것이었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국가에서 서울과 부산을 잇는 도로를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 사망자가 77명이 아니라 그 수십배가 될 것이란 증언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무튼 국가발전이란 사명 아래 혼을 갈아 넣었을 그 시절 공병대와 건설노동자에게 우리 사회는 깊이 감사해야 마땅하다. 당대 지식인들이 죄다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걸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엔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뭐 결단력이 있으니 쿠데타도 유신도 마구마구 저질러버린 것이겠지만서도.


베트남 도로를 달리며 한국 고속도로를 떠올리는 데는 나름의 맥락이 있다. 경부 고속도로 책정예산이 그때 당시 금액으로 300억원이 넘었고 1년 정부예산 1500억원의 2할쯤이 됐다. 공사가 시작된 뒤로는 비용이 계속 늘어 총 429억원이 들어갔다. 전 부처 가용예산을 죄다 돌려도 택도 없는 공사비용을 어디에서 조달했을까. 답은 미국 차관이다. 정부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는 대가로 차관을 얻었다. 여기에 합일협정으로 얻어낸 자금을 일부 떼어다 붙였다. 조상과 장병들의 피로 얻은 돈을 들이부어 산을 깨고 도로를 놓은 것이다. 그 도로가 한국의 오늘을 쌓아올렸다.


반대편엔 총을 들고 베트남 밀림으로 들어가 베트콩들을 쏘아 죽여야 했던 장병들이 있다. 윗대가리들은 자유주의 수호라고 말했으나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그렇듯 실제는 알려지는 것과 많이 다른 법이다. 국군 사망자는 알려진 것만 5099명, 부상자는 그 두 배가 넘는다. 군은 1대 20이 넘는 교환비를 올렸다고 자랑하니 베트남인 10만명쯤은 사살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부상자는 그 두세배로 잡으면 된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거점을 마련하려 조작극까지 펼쳐가며 시작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탈전에 한국이 끼여서 낸 희생이 이러했다. 그렇게 얻어낸 피 같은 돈이 고스란히 경부 고속도로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의 결단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걸 현실화한 정주영 현대 회장과 노동자들, 공병대 장병들의 노고 역시 엄청난 것이었다. 베트남에 가서 싸운 장병들은 또 얼마나 험한 일을 했는가. 그 노고 위에 살면서도 그 존재가 있었음을 너무 쉽게 잊게 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베트남이든 한국이든 아무 생각 없이 달려서는 안 되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은 널린 시신 위에 피로써 닦였기 때문이다.



2022. 9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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