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여행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무엇을 즐길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여행에도 분명한 취향이 작용한다. 누구는 그저 새로운 무엇을 접하는 것으로 만족하는가 하면, 누구는 편안함을 추구하고, 누구는 맛을, 누구는 아름다움을, 또 누구는 만남을 원하게 마련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나의 확장에 있다'는 인류학자며 프로여행러들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을지라도, 여행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그와 같은 생각에 다가서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다.


존경하는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에 이르는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볼 때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내 안에서 낯선 시선을 발견할 때의 짜릿함을 그는 분명히 느껴보았던 것이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해본 뒤라면 여행의 목적이 나의 발견에 있다고 생각할 밖에 도리가 없다. 버거킹에서 와퍼를 먹어본 이가 버거킹에 가는 목적이 감튀에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행을 할 줄 안다는 건 저를 위할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파리라 해도 누군가는 에펠탑과 개선문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루브르를 찾아가며, 누군가는 바게뜨와 마카롱과 와인을 찾는 것인데, 그조차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거기 깔린 목적이 다르기 십상이다. 남들 다 가는 핫플을 원하는 이가 있고 남들이 다 못가본 힙한 장소만 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들은 신경쓰지 않고서 제가 원하는 파리만 쫓아다니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그 모든 욕망은 오로지 자기로부터 비롯되니 여행에서 진정으로 마주하는 건 파리가 아닌 파리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제 자신인 것이다. 결코 기다릴 줄 모르는 시간과 기회 가운데서 제가 원하는 무엇만을 잡아채어 제게 선사할 줄 안다는 건 웬만한 솜씨로는 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실패를 통하여 나는 내가 원하는 여행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죽었든 살았든 마땅히 사귈만한 인간과의 만남이다. 그들이 과거 살았던 기록과의 대면이고, 그들이 누린 문화와의 접촉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그들을 빚은 자연이며 종교이고 사상인 것들이 모두 나의 관심을 이루는데, 결국엔 나의 여행은 뛰어난 인간에게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높은 곳에 오르고 미술관이며 박물관에 가며 유적지를 살피고 무덤을 찾아 추모한다.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그렇게 취하여서 흔들리는 눈으로 그들이 걸었을 법한 길을 따라 걷는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여행이다.


베트남은 선명하다. 과실도 초목도 동물도 인간들까지도 모두가 하나하나 선명해서 좋다. 그리하여 그들의 복식도 음식도 미술도 모두 선명해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여긴다. 베트남 국립 미술관엔 다른 어느 나라의 걸작과도 대적할 수 있을 법한 작품이 여럿 걸려 있다. 개성 있는 색채와 그 안에서 날뛰는 감성, 작품에 깃든 역사적 맥락까지가 저를 알아보는 이를 목빠져라 기다리고 섰다. 뛰어난 작가는 반드시 걸맞는 수용자를 갖게 된다고 나는 믿어 왔다. 표현과 시선이 감응하는 순간이 언제고 오고야 말리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 것이다. 베트남 국립 미술관에서 나는 그와 같은 순간을 보았다. 그건 제법 감동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