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어업의 품격> 서평
한국사람 치고 회 싫어하는 사람 드물다. 그중에서도 광어와 우럭이 잘 나간다. 요즘은 연어나 참다랑어도 흔해서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다. 유통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도 있지만 그보다는 생산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어획량이 아니라 생산량이라 쓴 이유가 있다. 시중에 팔리는 광어, 우럭, 연어, 참다랑어 등 상당수 어종이 양식이다. 피자나 샐러드, 스테이크와 어우러지는 각종 새우도 대부분 양식이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양식 물고기와 갑각류가 사람들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들이 뭘 먹고 살지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부끄럽게도 나는 없다. 올 한해 못해도 수십 마리 물고기를 잡아먹은 나도 이들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 내 젓가락 앞에 누웠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별나서가 아닐 것이다. 놀랍도록 세분화된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소비자가 생산의 여러 고리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약한 수준의 채식주의자 중에는 해산물을 먹는 이들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육지생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비윤리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도 주된 이유다. 소를 키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곡식과 물, 경작지가 필요하고 자연이 소화하지 못할 만큼 많은 똥과 트림이 배출돼 환경이 훼손된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해산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더욱 심각하기까지 하다.
어업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물고기는 물고기를 먹고 산다. 육지생물에 비해 규제가 없다시피 하다 보니 대부분의 양식장이 값싼 원료로 만든 사료를 먹인다. 대개는 혼획 과정에서 잡힌 소형어류와 어린 물고기를 갈아 생사료로 만든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양식 어류가 10톤 늘어났는데 생사료 생산은 51톤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물고기 한 마리가 자라는 데 제 몸의 5배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멸치, 까나리 같은 소형어종, 어린 고등어, 갈치, 참조기가 갈려 생사료가 된다. 물고기를 갈아 물고기를 만드는 꼴이다.
여기, 어업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서로의 이익만 취하다 텅 비어버린 바다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 서종석씨다. 그가 최근 낸 책 <어업의 품격>은 더는 외면해선 안 될 바다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지금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우리가 바다라고 부르는 육지 너머 짠 물이 넘실대는 그 공간은 지난 수백년 간 파괴돼 이제 텅 비기에 이르렀다. 전엔 잡히는 게 고기였지만 이제 물만 차 있는 지경이다.
어민들은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잡히는 물고기는 갈수록 줄어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인 어업의 멸종이 코앞에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속 불가능한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로 잡고 보이지 않는데도 잡는다. 잡지 않아야 할 것까지 잡고 풀어줘야 할 것도 놓아주지 않는다. 일로 잡고 취미로 잡고 하다 하다 불법으로 잡는다. 물고기가 남아나려야 남아날 수가 없다.
코앞에 다가온 어업의 종말, 인류의 선택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전체 생물 종의 40%가량이 사라졌다. 수가 적었던 종은 거듭 멸종도 당한다. 한 해 동안 멸종되는 종이 2만6000여종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이 추세라면 산호초는 2060년이 되기 전 지구에서 사실상 사라진다. 서식지와 먹이가 고갈되는 상황 속에서 견뎌낼 어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뒤엔 인간 차례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예비 IUU 어업국으로 지정됐다. 불법, 비보고, 비규제 어업을 하는 나라를 뜻하는 IUU 어업국으로 두 번째 지정된 것이다.
책은 한국이 두 차례 IUU 어업국으로 지정된 이유를 차분히 설명한다. 2011년 남극 로스해에서 한국 어선이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규정보다 4대 가까이 보고 없이 어획했다. 이 어선은 가공하고 남은 물고기 찌꺼기를 바다에 무단투기하다 적발됐다.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수역에서 조업하던 참치어선들도 어업허가권과 공문서를 위조해 조업하다 적발됐다. 15개 업체 30여 척의 어선이 불법을 자행한 사실이 보고됐다.
2015년 정부의 노력으로 IUU 어업국에서 간신히 해제됐지만 2년만인 2017년 남극수역 어장 폐쇄에도 한국 어선이 무단으로 조업을 해 재지정 통보를 받았다.
한국이 쌓아올린 부와 식탁에서 쉽게 만나는 물고기의 뒤엔 이런 비윤리적인 조업이 자리하고 있다. 극도로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소비자도 책임이 없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원양어업에서도 감시를 위해 승선한 옵서버에 대한 업무 방해와 언어 폭력을 저지른 사건이 폭로되었고, 조업감시센터 부재와 선박 모니터링 시스템(Vessel Monitoring System, VMS) 미설치 등 불법 어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낮은 인식과 부실한 조치가 드러나자 국제사회에서 맹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나라가 IUU 어업국으로 지정되자 정부는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불법 어업 감시를 위해 동해어업관리단에 조업감시센터(Fisheries Monitoring Center, FMC)를 설치했다. 비정부 기구와 민간 수산전문가들을 실무단으로 초청하여 국제적 이슈에 대응했다. 그 결과 약 2년 위인 2015년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리나라를 IUU 어업 가담국, 예비 IUU 어업국 지정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2019년 또다시 미국으로부터 예비 IUU 어업국으로 지정되는 수치스러운 일을 겪게 되었다. 우리나라 원양선박 2척이 2017년 남극수역 어장 폐쇄 통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3일이나 더 조업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특히 불법 어업과 불법 어업으로 잡은 어획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제재조치와 절차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정부는 과징금 신설과 처벌 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기준과 절차를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에 신속히 반영했고, 앞으로 불법 어업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약속한 결과 2020년 1월, 약 4개월 만에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47. 48p
*IUU 어업이란 Illegal Unreported and Unregulated fishing. 불법, 비보고, 비규제 어업.
<어업의 품격>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쉽게 넘어가는, 하지만 알아야만 하는 진실을 정확하게 지적한다는 데 있다. 한국이 두 차례 IUU 어업국에 지정된 사실을, 불법 어업 사례 중 우리가 흔히 접하는 참치회사 배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획과 혼획으로 어류가 급격하게 줄어가는 와중에 한국 소비자의 책임을 일깨우고 어업이 품격을 갖춰야 한다고 질책하는 책이 과연 몇이나 존재하느냔 말이다.
<어업의 품격>이 일깨우는 진실은 그런 것이다. 어업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 품격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고, 지속해야 미래가 있다는 것 말이다. 식탁에 올라오는 갈치나 명태 한 마리에도 역사가 있고 삶이 있다. 인간은 그 미래를 지속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지는 게 품격이다.
언제든 생선을 접시에 올려두고 뜯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책을 반드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어업의 품격>은 생선을 요리하고 먹는 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그 도덕을 지지하는 참신한 사례일 뿐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