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유생이 문경새재에서 칼에 맞아 죽어간다. 그는 곁에 선 이에게 한시 한 수를 지어 읊어준다.
'백 년 사직을 구하려고 / 유월에 갑옷을 입었다 / 애국하는 마음에도 허망히 죽고 말아 / 어머니 생각하며 혼백 홀로 돌아갈 뿐. 百年存社稷 / 六月着戎衣 / 憂國身空死 / 思親魂獨歸'
화산 이씨 십삼대손 안동 의병 이장발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나이는 고작 열아홉, 홀어머니와 갓 태어난 아들을 둔 채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사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나라를 위해 죽는 데는 다른 마음이 없는 것이니, 어미는 돌아보지 말고 출전하라"고.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왔다. 출진했던 경상의 유생들 중 성한 이가 많지 않았다. 통곡스런 임진년의 6월이었다.
화산 이씨의 시조는 이용상이다. 고려 고종 때 일족을 이끌고 귀의한 대월국 왕족으로, 황해도 화산군에 영지를 받고 고려인이 됐다. 고종은 그에게 식읍인 화산을 엮어 새 성씨도 하사했다. 리왕조 고종의 동생이자 혜종의 숙부이며 대월국 삼공 자리까지 올랐던 리롱뜨엉이 화산땅 이용상이 된 배경이다.
리롱뜨엉은 쉰둘이 되던 해 제 나라에서 도망쳤다. 리씨는 외척이던 쩐씨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신하가 된 상태였다. 옥좌를 빼앗은 쩐씨는 리씨를 살려두려 하지 않았다. 혜종의 장례가 치러지던 날 쩐씨는 리씨 일족을 죄다 궁으로 불러들였다. 문이 닫히자 참살이 시작됐다. 리씨 성을 가진 이중 살아서 나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입궁하지 않은 리롱뜨엉만이 일족을 보존하여 도망쳤다. 그는 송을 거쳐 바닷길로 고려에 이르렀다. 리씨가 일으킨 승룡시의 황궁 탕롱황성엔 리씨의 피냄새가 가득했다.
베트남의 통일왕조는 응우옌 왕조를 제외하곤 모두 이곳을 왕궁으로 썼다. 대월의 리씨와 쩐씨, 전후 레씨왕조가 모두 이곳에서 베트남을 지배했다. 후에를 수도로 한 응우옌 왕조 때나 사이공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식민시대 때도 이곳에 행정청을 두고 북베트남을 다스리게 했다. 탕롱황성은 지어진지 꼭 1000년이 된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오로지 역사를 아는 이만이 이곳을 찾는다.
베트남의 역사를 함께 한 탕롱황성은 오랜 부침을 겪으며 북문만이 겨우 남았다. 나는 이곳에 올라 베트남의 굴곡진 역사를 생각한다. 물 가득한 도시에 성을 쌓아 올린 전기 레왕조와 베트남의 전성기를 구가한 리왕조, 나라 최대의 위기를 극복한 쩐왕조, 무너진 나라를 다시 번영케 한 후기 레왕조를 떠올린다. 천년의 도성이 허물어지고 남은 문이 문화유산이며 박물관이 될 동안 베트남 민중들이 겪었을 고난과 영광을 생각한다. 대체 역사라는 놈은 얼마나 많은 고통 뒤에 고작 한줌의 영예를 허락하는가, 그 한 줌의 영예조차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어찌나 적은가를 서러워한다. 이쯤되면 도무지 술을 털어넣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이 아시아 제일가는 술의 나라 베트남인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