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깃발이 나부끼기까지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베트남 전역에 나부끼는 깃발이 있다. 청,황,적,백,주황의 다섯 색깔을 가로와 세로로 잇댄 깃발로, 터 좋은 곳이면 어디나 주루룩 꽂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관광객들은 도대체 이 깃발이 무어냐고 서로에게 묻다가는 이내 지쳐서 더 예쁜 무엇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건 불교기다. 불교가 기독교의 방식으로 기독교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 올코트경의 깃발이다. 스리랑카 불교의 그 깃발이 오늘날엔 만국 공통의 상징으로 통용된다. 그런데 절이 그토록 많은 한국에선 이 깃발이 유명하지 않다. 이유가 뭘까.


올해 초 세계적인 인물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불가의 제자이니 그들 표현으로는 적에 들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불가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로 꼽혀온 틱낫한 스님 얘기다.


틱낫한 스님은 2002년 출간된 <화>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한국에서도 유명해졌다. 그러나 한국인 중 그의 고국이 베트남이며 반전운동을 벌이다 정부와 갈등을 빚고 노년에야 귀국했단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일생동안 반전과 평화를 설파했다. 단순히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이념에 휩쓸리지 않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치열한 대립의 시대에 제3의 길이라니! 그는 공산정권과 자유주의 둘 모두로부터 미움을 샀다.


틱낫한 스님은 1966년 남베트남 정부로부터 반역자로 공표된다. 1975년 공산군이 미군을 몰아낸 뒤엔 입국까지 거부된다. 그가 입국자격을 얻은 건 2005년이 되어서였다. 그는 2014년 뇌출혈로 쓰러지고도 한참 더 지난 2018년에야 고향으로 돌아가길 선택한다. 그리고 4년 뒤 적에 든다.


베트남 불교는 굴하지 않는다. 한 세기 가까이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놓인 베트남에서 식민제국과 가장 격렬히 맞서 싸운 조직이 불교였다. 그런 이유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뒤 집권한 베트남 인사들은 불교에 호의적이었다. 불교는 베트남 남부의 토착문화와도 긴밀히 섞여 까오다이와 호아하오 같은 자생종교로 진화했다. 지역민의 지지도 커서 무시할 수 없는 세를 이뤘다.


그러나 베트남공화국 초대 총통이자 열성 가톨릭신자인 응오딘지엠의 차별은 노골적이었다. 그는 가톨릭 주교였던 둘째 형 응오딘툭 등 친인척은 물론, 공산세력의 종교탄압으로부터 도망쳐온 90여만의 탈북 가톨릭교도를 받아들여 요직에 앉혔다. 그들이 곧 정권유지의 기반이 되었다.


행정부와 국회 등 공직엔 가톨릭교도의 세가 강했다. 전체 인구의 10%를 넘지 않는 가톨릭교도가 정보국을 위시한 요직을 두루 차지했다. 급기야 불교기를 내걸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까지 시행되니 불교도가 폭발하기에 이른다. 항거시위가 일어났고 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아홉 명이 숨졌다.


결정적 순간은 1963년 5월 29일에 있었다. 일흔셋 고령의 틱꽝득 스님이 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겼다. 일주일 만에 아홉 불제자가 뒤를 따랐다. 불교의 조직적이고 격렬한 저항이 그렇게 시작됐다. 8월엔 사이공의 싸 러이 사원에 군경이 출동해 불교도와 충돌했다.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백악관 주도로 정권교체 논의까지 나올 정도가 됐다. 그러나 감을 잃은 응오딘지엠은 불교도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 바빴다. 그해 11월 쿠데타가 일어나고 응오딘지엠 정권은 붕괴된다. 베트남에 자유와 민주의 깃발이 나부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가 그토록 허망하게 사라졌다.


공산군의 발호로 혼란이 가속화하자 미군이 개입한다. 8년에 걸친 전쟁은 공산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집권한 공산주의자들은 베트남의 종교활동을 일체 중단시켰다. 식민정부에 항거하고 응오딘지엠 정권에도 타격을 입힌 베트남 불교가 또 한 번 짓밟힌다. 이 무렵 남베트남을 탈출한 보트피플 가운데 불교도가 제법 많은 건 이러한 연유에서다.


오늘날 베트남 전역엔 여러 사원이 퍼져 있다. 불교는 베트남 최대 종교로서의 권위를 굳건히 지킨다. 도이머이 이후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며 베트남 불교 명소는 유명 관광지로 변신했다. 다낭의 영흥사나 판시판산 정상의 빅반티엔투 사원이 그런 곳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풍쑤비엔 사원도 언젠가는 제 소리를 알아주는 이와 만날 것이다.


베트남 어디서나 펄럭이는 오색의 깃발 뒤엔 선연한 핏자국이 묻어 있다. 그 선명한 깃발이 널리 사랑받게 되기까지 불교도가 겪어낸 탄압의 역사가 길고 질었음이다. 일제의 강점 뒤 그저 국기만이 아니게 된 태극기처럼, 오랜 침체 뒤에야 제 소명과 만난 유니온잭처럼, 진정으로 흥하기까지는 억눌림의 세월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김성호

이전 03화화산 이씨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