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리는 것보단 떠미는 편이 낫다. 떠밀리듯 다닌 학교에서 난 늘 지루했었다. 재미없는 걸 배우고, 지루한 아이들이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걸 성의 없이 들었다. 등교시간부터 하교종을 기다렸다. 즐거운 건 언제나 학교 밖에 있었다. 어느 선생이 불러 교실 창으로 나를 본 어머니는 너는 왜 종일 운동장만 보고 있느냐 속상하다 말했다. 하지만 난 운동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운동장 밖 떡볶이집을 오가는 사람들과 땡땡이 치는 경찰관들과 그 모든 걸 신기해하던 복덕방 강아지 철구나 그도 아니면 비슷한 무엇을 보고 있었을 터다. 나는 언제나 학교 울타리 바깥만 보았으니까.
학교가 재밌어진 건 학교에서 시키지 않는 일을 하고부터였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고전 100권’ 목록에 든 책을 읽는 것조차 즐거웠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딴 짓 하는 학생을 못견뎌하는 수학선생 앞에서 몰래 책을 읽기를 즐겼다. 그건 내가 학교에서 처음 즐거워한 일이었고, 그가 유독 그 일을 싫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몰래 글을 쓰고 몰래 글을 읽고 몰래 속삭이다가는 들키곤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서 더 즐거웠다. 그래서 학교조차 즐거워질 수 있단 걸 알았다.
나는 여적 떠밀리듯 사는 걸 혐오한다. 그건 너무나 재미가 없다. 지루하고 심심하다. 어느 모로 보아도 떠밀리는 것보다는 떠미는 편이 낫지 않은가.
2022. 10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