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숭상한다네

단상

by 김성호

말과 사람 사이에도 연이 있다 믿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내가 아끼던 어느 사람은 제게 자주 닿는 말과 귀에 걸려 오래 남는 말은 특별하다 여겼다. 개중에서도 어느 시절 유독 자주 들리는 말을 모아다가 내게 들려주곤 하였는데 그건 그의 고민이거나 소망이거나 저도 알지 못하는 욕망이거나 필요이거나 뭐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요즈음 나는 지식을 평가절하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로 다른 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거나 지식이 넓은 건 별 쓸모가 없다거나 뭐 비슷한 류의 말을 하곤 하는 것이다. 내게 그런 말을 한 이들은 대부분 사귈 만한 사람이었으나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고는 좀처럼 견딜 수가 없다. 그건 내가 지식을, 지식의 가치를 아는 이를, 지식이 많고 깊은 이를 애정하기 때문이다.


지혜를 지식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대개 지혜로움을 숭상한다. 지식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흔히 날카롭고 예민하며 뽐내길 좋아하는 것과 달리 지혜를 숭상하는 이들은 유연하고 남을 돌볼 줄 알며 쉬이 저를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혜를 좇는 것이 지식을 챙기는 것보다 현명한 일처럼도 여겨진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지식이 흔해진 세상에서 고급진 백과사전도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지식의 역할은 온라인 저장고에 맞겨두고서 지혜만 좇다 보면 지혜로운 인간이 될 거라 믿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쯤되면 지혜란 처음부터 타고 나는 것이거나 기이한 수련을 거쳐야만 획득되는 신비한 무엇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지식이 지혜의 뿌리란 걸 안다. 지식은 지혜로운 사고의 바탕이다. 무릎이 쑤시면 비가 온다는 건 경험으로 축적한 사실을 지식으로 묶어낸 뒤 얻은 지혜다. 2007년 대호의 도루 역시 홍포의 어깨가 맛탱이가 갔고 포수들이 저를 무시할 즈음이 됐단 걸 알아 한 지혜로운 러닝이었다. 권율과 황진이 이곳 전주성에 앉아 농성하는 대신 웅치와 이치로 나아간 지혜 또한 먼저의 병법과 지리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발명들과 제 쓰임을 찾아가는 기술들 역시 뜯어보면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요컨대 세상 어느 지혜도 그를 받치는 지식 없이 바로 서지 않는다. 반면 지식이 부족한 지혜로움이 쉬이 사술이며 사이비로 연결된단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자주 보았다.


오늘날 나일론을 보고서 비단이며 베와 모포만 있던 시절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과거를 떠올리는 이는 드물다.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아예 흔히 볼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린 연탄이 한때는 얼마나 혁신적인 것이었는지를 아는 이 또한 드물다. 반면 어떤 이는 다닥다닥 나붙은 쪽창 건물 앞에서 수천년간 태양에 의존했던 건축사를 읽어내기도 한다. 지식이 없다면 값싼 섬유화학 제품이며 고체화석 연료이고 풍경 볼 줄 모르던 시대의 건축이라 비웃을 것을 누군가는 오늘의 스마트폰이며 자율주행 못잖은 혁신의 흔적으로 이해해내는 것이다. 이 모두 지식이 없으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콜로세움 앞에서 2000년의 역사를 느끼는 이와 사자와 싸우는 검투사를 상상하는 이, 그리고 그저 요상하게 생긴 낡은 건축물만 바라보는 이가 어떻게 같아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가 지식 깊은 이를 애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일론과 연탄처럼 한 때의 혁신이 너무나도 빨리 추락하는 세상이다. 추락한 혁신이 아무 가치 없는 것처럼 나뒹군다. 오늘날 지혜로운 일로 여겨지는 많은 판단이 실은 얼마나 무책임하고 갈등만 조장하고 있는지를, 또 오늘날 무책임하다 욕을 먹는 많은 일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직 아주 소수의 적의 없고 현명한 이들만이 알아채고 있다. 그건 충분한 지식으로부터 얻어지는 지혜로움이다. 지혜가 모자람을 탓하고픈 순간 정작 부족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지식임을 명심할 일이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지혜는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저도 모르는 순간 여문 지식이 지혜의 열매를 맺는다. 지혜로움에 가까운 자일수록 지식을 숭상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지혜에 닿은 지식이다.



2022. 1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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