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공감하게 하는 인간

단상

by 김성호

나는 공감 능력이 없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평균보다 훨씬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없이 살다보니 없는 것의 불편을 많이 느낀다. 하찮은 이들과의 관계에서야 공감능력이 없어 되려 편하지만, 장점이 아무리 크다 해도 반대가 주는 단점과는 댈 게 아니다.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가 부족한 공감력으로 파탄에 이르는 건 흔한 일이다.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이 남은 건 내가 유달리 매력 있는 이를 좋아하며 상대도 그렇기 때문이지, 공감력 때문은 아니다. 만약 상대가 공감을 구하는 이라면 나는 그와 거리를 두지 않고는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내가 공감력이 뛰어난 친구들과 일년에 채 몇번을 만나지 않고 영역도 나누려 드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한때는 공감력을 길러보려고도 했으나 마음처럼 쉬이 되진 않았다. 공감도 정서이고 지적 능력인데 노력하고 주의한다고 단번에 쑥 자라지는 않는 것이다. 대신 자신 있는 부분을 내보이고 나와 관계를 가지려면 그쯤은 감내하라 무언의 협정을 맺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하다. 만약 뜻만 맞다면 멋진 관계가 들어서기도 하는 것이다.


처음 기자 생활을 하고서는 공감력이 떨어진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처럼 느껴졌었다. 제법 시간이 흘러서야 공감력이 좋다고 좋은 사람이 아니며 좋은 기자인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공감력 있는 인간이 형편없는 기자가 되는 모습을 반대의 경우보다 자주 목격하게 되면서였다. 공감력이 높다면 사건에 깊이 다가설텐데 하던 기대는 공감력이 높은 애들은 울고서 일을 망치더라 하는 실망이 되고 말았다. 도리어 낮은 공감력이 장점으로 작용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으니 공감의 유무는 좋은 인간이 되는 결정적 차이도, 좋은 직업인이 되는 필수적 요건도 아닌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면접자리에서 받는다면 솔직히 답하진 말라고 권하겠다. 공감력이 없는 이들은 대체로 공감력의 유무에 무심하지만 공감력이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에게 공감보다는 혐오를 쉬이 드러내는 탓이다.


무튼 나는 공감능력 그 자체보단 제 장단을 알고 그를 보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결국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의 문제란 인간을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여기지 않는 데 있다. 이들은 오로지 제가 생각하는 미덕만을 상대에게 빼내어서 홀로 아끼기 십상이다. 아낄만한 미덕을 갖지 못한 이라면 쉬이 하찮게 여기고 심지어는 그런 평가를 내보이는 걸 아무렇지 않아 하기도 한다. 동류들이야 아무렇지 않겠으나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이 가져야 할 태도라곤 하기 어렵다.


남의 살이 코앞에서 베여도 안타까움 대신 상대의 무도함이나 베인이의 허약함에 분노하는 것이 나와 동류의 인간이다. 어쩌다 못한 이의 하소연을 들어도 그 무능에 피로함을 느끼고 무시하기 십상이다.


보완하는 방법은 그닥 어렵지 않다. 흥미를 끄는 인간을 연구하면 된다. 뛰어난 이들이 약자를 대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갖거나 갖잖은 재주로 남을 해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가지면 된다. 그런 관심이라면 공감력이 없어도 쉬이 가질 수 있으므로, 안테나를 세우고 거듭 듣고 보면 될 일이다. 경험상 공감력이 없는 이들이라도 판단력은 괜찮은 경우가 많으니 막장의 광부처럼 미덕을 캐다보면 누구에게라도 쓸만한 무엇을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오래 들여다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다보면 애정하게 되는 법이다. 결국은 오래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공감력이 좋은 이들과 별 차이 없는 좋은 인간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없는 공감력을 붙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다. 쓸만한 세계관과 인생관을 세운 뒤 집요하게 지켜보는 일이다. 시시하고 하찮게 느껴질지라도 일단 견디고 가치를 뽑아내는 법을 익혀내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후원한 건 올해로 7년째다. 백수가 되며 후원하던 기관 대부분을 끊었지만 남겨둔 몇곳 중 하나가 이곳이다. 이유는 이들의 활동이 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활동을, 매달 빠져나가는 대금을 보고 있자면 각자의 고난은 각자가 알아서 감당하자고 수시로 외치고픈 나의 성미가 진정되고, 그래도 누구는 장판교에서 고함을 지르겠다 나아가고 있단 걸 기억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내는 얼마되지 않는 돈이 아깝지가 않다. 나같은 인간이 공감이란 이름의 단체를 후원한다는 점도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대목이다. 공감하진 못해도 공감하게 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2022. 11

김성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숭상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