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감사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단상

by 김성호

만권이나 되었다. 상점제도를 만들어 거둬들인 것, 주변부대에서 폐기하는 것, 여기저기 기부받은 것까지 책장에 꽂고 쌓고 두줄씩 채우고도 넘쳤다. 소대마다 고참들이 쥐고 내어주지 않던 국방문고며 어딘가 처박혀 굴러다니던 책까지 대대장 명령을 받아 도서관에 들여놨다. 남의 생활관 문을 차고 들어가서 까서 나오면 디진다 사유재산이고 뭐고 내놔새꺄 하는 맛이 공산당 완장찬 듯 재미졌다.


책을 읽을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가려내고 도서관이라 할 수 있게 체계를 잡는 게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틀을 만들고 버려진 신발장부터 썰매까지 뜯어 책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장에도 넘치게 되어 거지 같은 책을 빼어다 폐지로 팔게 되었다. <돈 키호테> 명장면처럼 시크릿이며 마시멜로며 읽으나 마나한 온갖 책을 가려다 팔아치우는 맛이 그만이었다. 박스 셋을 팔면 책 한 권을 구했는데 행복이란 것과 내가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게 그 때였을 테다.


매일이 추가근무였지만 즐거웠다. GOP에서 갓 철수한 참이었고 대대 첫 도서관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사명감이 들끓었다. 몇 년째 비어 있던 대대 정훈병 자리를 차지한 것부터 대대장과 정훈장교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단 것까지 개같이 구르던 병사에겐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두 배로 고생하는 게 아니라 두 배로 쓰이는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내가 아니면 책 한 권 없던 창고에 누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원 없이 책을 만지는 건 그 자체로 즐거웠다. 나는 내가 고안한 규칙으로 만권이 훌쩍 넘는 책 가운데 무엇이든 삼십초 안에 찾아내게 되었다. 내 뒤를 잇는 누구라도 일분이면 척척 책을 찾아 내놓게 될 것이라고,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문헌정보체계를 처음 만든 인간처럼 진한 기쁨에 몸을 떨었다.


대대장 명령으로 중졸들을 데려다 검정고시 교습도 시작했다. 학대와 교련에 재능이 있던 터라 사단 최고 합격률로 휴가증까지 받아냈다. 책을 읽고 싶은 놈들을 모아다가 독서회도 열었다. 도서관은 날로 발전했고 나는 점점 더 바빠졌다. 일과까지 자주 빠져서 소대원들과는 밥을 먹을 때나 잠시잠깐 만났다. 일을 마치고 올라오면 모두 잠들어 있었으니 몇번은 아저씨가 되었다고 서운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내 관심은 오로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 번듯해질수록 손 볼 곳도 함께 늘어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나와 함께면 이 도서관은 전국 최고의 병영도서관이 될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야망이 자라났다.


수시로 놀러오는 녀석들이 김상뱀님 너무합니다, 우리 얼굴 좀 보고 삽시다 불만을 쏟아내도 가서 일이나 보라고 쫓아내기 일쑤였다. 그날도 비슷했다. 한 놈이 군것질거리를 싸들고 와서는 밍기적댔다. 영양가 없는 소리만 쏟아내기에 대꾸 않고 할 일만 하였는데 얼마가 지났을까 생활관에 올라가잔 것이다. 신병이 온다던가 뭐라던가 거절할 수가 없어 따라 나섰는데 생활관 문고리를 돌리자마자 아이고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캄캄한 방 안에서 사내놈들 수십명이 나를 둘러싸곤 "생일 축하합니다" 우렁차게 합창들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생일이었나 어리둥절하여 정신을 차리려는데 촛불따라 은은하게 흔들리는 선후임들 얼굴이 훅 하고 한방에 다가왔다. 순간 울컥 치미는 감정은 이제껏 맛본 적 없는 것이었다. 까딱하다간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 노래를 끝까지 다 듣고 촛불도 불고 뭐라뭐라 시키는 걸 그대로 따라했는데 불을 켜고보니 돈도 없는 새끼들이 냉동을 잔뜩 돌려두고 각을 잡고 앉는 것이다. 거기다 대고 나는 GOP 철수하니 냉동도 시간도 남아도느냐 쏘아대곤 알아서들 쳐먹어라 뒤돌아 내려왔던 것이다. 돌아보면 치미는 감정을 처음 만난 것인데 나는 그것이 그리도 낯설고 민망하였다. 돌잔치 빼고 생일파티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2월에 태어난 나는 생일이 죄다 방학이었고 집에서도 생일을 챙길 만한 환경이 못되었으며 어울리는 놈들도 그런 성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땐가 한 녀석이 생일선물이라 포장된 걸 불쑥 내밀기에 여자애냐 하였는데 그대로 그와는 말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생일에 선물다운 걸 주는 게 여자애의 일이라고 아무도 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내 못남을 남에게 덮어씌우는데 그리도 익숙하였다.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단 걸 나는 한참이 더 지나서야 알았다. 제때 갚지 못한 고마움은 원귀처럼 찾아와서 때때로 나를 괴롭게 한다. 어쩌겠나. 죄다 내 탓인 것이다.



2022. 1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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