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셀마>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70] '셀마'가 보여준 디테일의 힘
7월 말 극장가는 지난 22일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독주하는 형국이다. 올해 가장 돋보이는 한국영화 가운데 하나기에 개봉 전부터 흥행이 예견되었지만 지금의 흥행 속도는 기대치를 넘어선다. 무려 1370개의 스크린에서 하루 6813회 상영되며(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24일 기준) 3일 만에 15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은 이 영화의 최종성적이 어떨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암살> 같은 영화의 뒤엔 당장 스크린 하나도 절실한 작품이 적지 않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주제가상을 수상한 <셀마>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65년 흑인 투표권을 위해 셀마 행진을 기획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데이빗 오예로워 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와 오프라 윈프리의 공동제작으로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한국에서는 좀 상황이 다르다. 아카데미 수상작이 주로 개봉하는 3~5월이 아닌 블록버스터가 넘쳐나는 7월 말 개봉한 것, 전기 영화 성격이 강한 드라마란 점 등 흥행에 제한되는 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암살>이 개봉하고 하루 뒤인 23일 막을 올린 <셀마>는 개봉일 하루 동안 전국 44개 스크린에서 74회 상영되며 1051명의 관객을 모았다. 독보적 1위 <암살>이 88번 상영될 때 겨우 1번 씩 상영된 꼴이다. 1051명은 관객동원 순위로 보면 전체 12위에 해당하지만 독보적 1위 <암살>이 같은 날 기록한 관객 수의 0.24%에 불과하다. 1위와 12위의 격차가 이토록 큰 게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셀마>가 부족한 영화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버드맨> <보이후드> <위플래쉬> 등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그려낸 건 물론이고, 정치드라마의 맛과 멋을 잘 살려냈다. 출연배우들은 두루 안정된 연기를 펼쳤고 그들 가운데는 <이프 온리>의 택시기사 톰 윌킨슨,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팀 로스, <제리 맥과이어>의 쿠바 구딩 주니어, <7일간의 사랑>의 마틴 쉰과 같은 명품 배우들도 있었다. 존 레전드가 부른 주제가 'Glory'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비교적 무명에 가까운 에바 두버네이가 연출을 맡았다는 걸 불안요소로 지목한 이들도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수그러들었다.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준 진지한 접근과 섬세한 표현은 어느 유망한 감독도 쉽게 따르지 못할 수준이었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데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다루다보니 지루함을 느끼기 쉬웠는데 단 몇 장면의 강렬한 연출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특히 공권력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1차 셀마행진' 장면은 일품이었다.
디테일의 미덕...악마 아닌 천사였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고들 말한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작은 부분이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테일에 숨어 있는 게 어디 악마뿐이겠는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천사 역시 그곳에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때로는 작은 부분이 영화 전체를 구원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셀마>는 보는 이가 숨이 가쁠 만큼 리드미컬하게 흘러가는 작품이 아니다. 영화는 잔잔하게 흐르며 많은 것을 보듬고 살피는 디테일에서 승부수를 던진다. 아주 작고 섬세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장면들. 감독과 스태프은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까.
셀마에서 활동하는 운동가 바벨(커먼 분)과 여성운동가 내쉬(테사 톰슨 분)가 만나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몇 마디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이 먼저 몇 차례 접촉한 적 있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내쉬와 운동가들을 태운 차가 셀마의 어느 도로변에 선다. 그리고 저 편에서 다가오는 바벨. 카메라는 단 두 컷, 그러니까 조수석에 탄 내쉬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다가오는 바벨이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장면을 잡아낸다. 사적인 대사 하나 없지만 영화는 이를 통해 운동가 사이에 싹터 있었던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고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준다.
어디 그 뿐인가. 끝끝내 흑인인권운동을 강압적으로 저지하려 했던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러스(팀 로스 분)에게 린든 존슨 대통령(팀 윌킨슨 분)이 건네는 말은 또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우리는 변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던 대로 살고 싶을 뿐이죠"라고 말하는 그에게 존슨 대통령은 "어떻게 평생 빈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요"라고 되물으며 "역사가 나와 당신을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까 두렵소"하고 비난한다.
영화는 이전까지 수구적이고 폭력적인 인물처럼 그려진 조지 월러스가 빈민에게 노력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한 마디 대사로 드러냄으로써 옳고 그름이 혼재되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회의 한 면목을 아이러니하게 드러낸다. 계속 마틴과 반목한 존슨 대통령을 공정하게 재평가하는 효과까지 거뒀음은 물론이다.
이밖에도 영화는 2년 먼저 셀마로 들어와 투표권 운동을 해온 학생단체가 마틴과 그 조직의 방문으로 갈등하는 모습, 마틴이 이념보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우선해 조직을 이끄는 모습, 인권운동에 헌신하면서도 실상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의 모습 등을 통해 운동권 단체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와 실상을 그려낸다. 외부의 압제를 이겨내고 끝끝내 싸워 이겨낸다는 전형적인 구성과 달리 운동권 내부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마틴이 처한 현실과 고민을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더불어 영화는 백인의 인종차별적 증오범죄가 흑인 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 백인에게 더욱 악질적으로 미치는 상황을 보이며 증오범죄가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그려낸다. 그야말로 폭넓고 사려 깊은 디테일이다.
위인의 위인화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다
조금 더 핵심적인 부분으로 다가서보자. 영화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이후 마틴)의 전기 영화 성격을 드러낸다. 특이점이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 가장 영광된 순간에 끝나는 대부분의 전기 영화와 달리 <셀마>는 모든 영광의 뒤편, 그러니까 그가 가장 회의감과 허무함에 휩싸여 있던 순간에서 시작된다. 바로 그 마틴이 말이다. 영화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연설하는 마틴과 미국 어느 마을 교회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하는 흑인아이들을 교차해 보이며 시작한다. 오랜 노력의 결과로 노벨평화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지만 흑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았음을 영화가 폭로하듯 그려내는 장면이다.
마틴의 모습 역시 위인전의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가끔 절망하고 자주 고민하며 때로 그 자신의 나약함을 주변에 내보이기까지 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영화가 그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세 번의 결정적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 첫 번째는 구속된 마틴에게 말콤X와 만난 아내가 찾아와 말콤X를 마틴의 자리에 대신 세울 것을 제안하는 장면이다. 이때 마틴이 보이는 반응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마틴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콤X를 비난하고 심지어는 "그 자식한테 반하기라도 한 말투로군"하고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두 번째 장면은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마틴이 아내의 추궁에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던 그 장면 말이다. 집으로 전해진 온갖 공갈과 협박에 시달리던 마틴의 아내가 어느 날 그를 붙잡고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를 들려준다. 남자와 여자가 성행위를 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마틴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며 극구 부인한다. 그런 그에게 그간 자신이 겪어온 모든 고통을 쏟아내듯 토로하는 아내. 그리고 아내는 묻는다. "나를 사랑해?" 마틴이 답한다. "사랑해" 그에게 아내가 다시 묻는다. "그럼 저 여자들은?" 마틴이 답한다. "아니"
그가 외도한 남편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먼저 그 사실을 부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목사이자 인권운동가인 마틴이 신과 아내 앞에서 부정한 행동을 해왔으며 심지어는 거짓으로 그 사실을 부인하기까지 한 것이다. 의미심장한 대화로 처리한 이 장면에서 마틴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때로 보통의 인간보다 더욱 나약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행진 중 왜 돌아섰을까
마지막 세 번째 장면은 '2차 셀마행진'신이다. 앞서 벌어진 행진에서 앨라배마 주와 셀마 시의 공권력에 흑인들이 잔혹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속속 셀마로 모여들며 마틴을 중심으로 2차 행진을 계획한다. 결전의 날이 밝자 마틴을 위시한 수천의 시위대가 1차 행진의 진압현장인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로 나아간다.
그런데 경찰의 행동이 이전과 다르다. "해산"이라는 명령과 함께 다리 양쪽으로 늘어서는 경찰병력들. 마틴은 그 앞에 멈춰서 잠시 고민하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한다. 영문을 모르면서도 그를 따라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는 군중들. 그런데 기도를 마친 마틴은 말없이 돌아서서는 군중을 헤치고 셀마로 돌아온다.
그를 따라 돌아온 운동가들은 마틴에게 후퇴의 이유를 묻는다. 길은 열렸고 카메라도 모여 있었으며 군중 속에는 적지 않은 수의 백인들도 있었는데 계획에 없던 철수를 선택한 마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틴은 그들에게 "내가 비난받는 건 감수하더라도 다시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었다"라고 답한다. 양쪽으로 늘어선 경찰이 퇴로를 끊고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틴의 이 선택을 영화는 의미심장하게 잡아낸다.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마틴의 변명을 들려주며 그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가 왜 갑작스레 주저앉아 기도를 했고 다시 돌아서 철수했으며 그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변명했는지를 영화는 말 그대로 찬찬히 보여준다.
얼핏 그저 보여주고만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사실이 분명하게 떠오른다. 마틴을 연기한 데이빗 오예로워는 길을 터주고 늘어선 경찰을 바라보며 마틴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섬세한 표정연기를 통해 드러냈다. 이 장면을 보면 폭력에 대한 공포가 마틴을 사로잡고 있었음이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그 공포를 극복하거나 다른 이와 대안을 협의하지 않고 주저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퇴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다.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대신 표정과 행동, 분위기 등 디테일을 통해 상황을 그려내고 있기에 해석이 다양할 수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이 말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마틴은 공포에 젖어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행동을 했으며 이는 인권운동의 본지를 해치는 것이었다. 에드워드 페투스 다리 위에서의 마틴은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었다.
이러한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사려 깊은 디테일을 통해 마틴 루터 킹 주니어라는 위인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위치까지 끌어내린다. 그리고 다시 그가 그 모든 공포와 비겁을 이겨내고 전진하는 모습을 그리며 진정으로 위대함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전기 영화로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어떠한 미화도 없이 인물의 진면목을 그림으로써 사실에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전기 영화 넘어 훌륭한 정치드라마로까지 나아가
단순히 전기 영화에 머물지 않고 이면을 비추는 정치드라마로까지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건 <셀마>의 또 다른 미덕이다. 영화는 법제된 투표권 행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마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존슨 대통령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마틴의 요구에 지지부진하게 대응하며 셀마의 갈등이 중앙정치 사안으로 번지는 걸 극도로 경계하지만 역시 실리적 이유로 흑인 투표를 용납할 수 없는 월러스 주지사의 강경한 대응 탓에 투표권 문제가 전국적 사안으로 떠오르는 걸 막지 못한다.
이밖에도 영화는 J.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의 강경한 진압 제안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관료의 태도, 법관의 독립적인 판결, 급진적 흑인 자결주의자 말콤 X의 제안, 인종차별주의자인 셀마 보안관의 폭력, 이름 모를 투표자 등록소 직원의 몰상식한 행동 등 다양한 인물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비춘다. 그리고 이로부터 어떻게 흑인이 차별받고 싸웠으며 권리를 얻었는지 그 힘겨운 여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셀마>는 흑인을 배격하는 편견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며 드러나게 되는지, 이에 맞서는 움직임은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잔잔하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존중받아 마땅한 인물을 존중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는 사리판단이 분명한 영화였다.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유익한 영화였다. 온갖 위협과 협잡에 맞서 옳은 것을 실현하려는 인물이 등장하는 멋스런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온갖 모욕을 감내하고 몇 번이고 투표자 등록소를 찾아가 선거인단에 등록하려 애쓰던 애니 리 쿠퍼(오프라 윈프리 분)를 바라보며 내가 가진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시절보다 온전한 민주주의에 한 걸음 다가서 있는 한국의 유권자 및 유권자가 될 시민들이 꼭 보았으면 한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