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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26. 2023

주인공 된 '미니언즈', 신 스틸러일 때가 좋았지

오마이뉴스 게재, <미니언즈>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72] 스핀오프 잔혹사 피하지 못한 '미니언즈'

▲ <미니언즈>의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공포물이 주름잡던 여름 극장가의 주도권이 국내외 블록버스터에 완전히 넘어간 모양새다. 지난해는 4대 배급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군도> <명량> <해적> <해무>가 흥행 바통을 이어가며 다른 작품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더니 올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 최동훈의 <암살>이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한국영화와 할리우드의 자존심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꿰찼고, 이병헌, 전도연의 <협녀: 칼의 기억>도 출격을 대기 중이다. 이에 맞서는 건 할리우드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마블 히어로 영화다. <판타스틱 4>와 <앤트맨>이 늘어난 국내 마블영화 팬의 지지를 업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블록버스터의 강세가 이어지는 박스오피스 순위표에서는 의외의 흐름도 포착할 수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의 강세다. 방학을 맞아 일제히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박스오피스 4위부터 7위까지를 점거하고 있는 것. 일찌감치 4백만 관객을 돌파한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과 <미니언즈> <명탐정 코난: 화염의 해바라기> <극장판 요괴워치: 탄생의 비밀이다냥!>이 그것이다.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형국인데 아무래도 부모의 지지를 받는 미국 애니메이션이 다소간 우위를 점하는 듯하다.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미니언즈>다. 지난 7월 9일 개봉해 2주 만에 2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빠른 흥행속도를 과시하고 있다. <슈퍼배드> 시리즈를 히트시킨 일루미네이션이 제작을 맡았고 시리즈 성공의 주요한 원인으로까지 평가받은 미니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슈퍼배드> 시리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슈퍼배드>의 스핀오프 <미니언즈>, 스핀오프 잔혹사를 뒤집을 수 있을까?

▲ <미니언즈>의 그나마 참신했던 오프닝 시퀀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미니언즈>는 2013년 2편까지 제작된 <슈퍼배드> 시리즈의 스핀오프 영화다. 스핀오프란 오리지널 영화의 커다란 흐름과 상관없이 특정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 독립적으로 만든 작품을 말하는데 오리지널 영화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속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미니언즈>는 <슈퍼배드> 시리즈에 등장해 특유의 귀여움을 과시하며 인기를 얻은 명품조연 미니언 종족을 전면에 내세운 스핀오프로 개봉 전부터 오리지날 시리즈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스핀오프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디즈니와 애니메이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드림웍스가 대표적이다. 드림웍스는 2011년 <슈렉>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장화 신은 고양이를 내세워 <장화 신은 고양이>를 제작한데 이어 지난해엔 <마다가스카> 시리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펭귄 4총사를 주인공 삼아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내놓아 쏠쏠한 재미를 봤다.


드림웍스만큼 전격적인 행보를 보이진 않지만 디즈니에게도 스핀오프는 끌리는 선택인 듯하다. 2013년 개봉해 전 세계를 휩쓴 <겨울왕국>의 인기 캐릭터 올라프의 활용방안이 끊임없이 논의되더니 안나와 올라프, 크리스토프 등이 출동하는 스핀오프 영화 <프로즌 피버>가 제작되어 올해 소개됐다. 장편 개봉에 앞서 상영되는 7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에 불과했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디즈니가 스핀오프에 관심을 드러냈다는 점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미니언즈>는 유니버설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일루미네이션이 디즈니와 드림웍스의 양강구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작품이다. <슈퍼배드> 시리즈에 이어 스핀오프까지 성공을 거둔다면 십수 년간 이어져 온 양강구도가 재편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일루미네이션이 산드라 블록, 마이클 키튼 등 명성 있는 배우에게 목소리 연기를 맡긴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스핀오프에 희망은 있는가?

  

▲ <미니언즈>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스칼렛 오버킬(산드라 블록 목소리 연기). 그녀의 전형적인 캐릭터로는 대세를 뒤집기 역부족이었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하지만 스핀오프는 가능성만큼이나 한계 역시 뚜렷하다. 비교적 스핀오프 제작이 활발했던 히어로 영화 가운데 <엘렉트라> <캣우먼> <더 울버린>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개봉해 실망감만 안겼고, 야심차게 제작된 <에반 올마이티> <스콜피온 킹>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드림웍스의 <마다가스카의 펭귄>이 성공 사례라고 할 만하지만 그밖에 스핀오프 영화로 성공한 작품은 손에 꼽는 게 현실이다.


문제의 근원은 오리지널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용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조연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주연으로 바꿀 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를 수정할 경우 본연의 매력이 훼손될 수 있고 수정하지 않으면 영화의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인데, 그럼에도 제작자가 스핀오프 영화를 기획하는 건 오로지 상업성 때문이다. 오리지널 영화의 인기에 기대 성공을 이어가자는 얕은 생각이 대부분의 스핀오프 영화의 출발점이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큰 신뢰를 놓치다

  

▲ 배고픈 스튜어트의 눈에 비친 케빈과 밥.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려 착시현상을 경험한다는 흔한 설정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미니언즈>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신스틸러라는 말은 <슈퍼배드>의 조연일 땐 찬사였으나 <미니언즈>의 주연으로선 벗어야 할 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미니언의 캐릭터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고 이를 해소할 만한 장치도 특별히 준비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영화에 쏟아지는 대중의 유일한 평가, 요약하자면 '귀여움과 지루함의 대결'이라는 틀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유일한 준거가 되어버렸다.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제대로 된 언어 하나도 구사하지 못하고 그렇게 만들 생각조차 없었던 미니언 캐릭터를 앞세워 한 편의 영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생각은 무모했다. 하물며 왕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극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미니언과 악당의 캐릭터도 한숨만 나올 정도다. 오로지 캐릭터의 귀여움으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소수의 관객을 제외한다면 <미니언즈>는 호평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미니언즈>는 스핀오프 제작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지나치게 성공을 좇다 보면 어렵게 쌓은 신뢰와 명성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남긴 교훈이라면 교훈일 수 있겠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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