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오로지 낮은 시선에만 비치는 것

단상

by 김성호

이천이십이년이다. 지구가 태양을 이천 번 하고도 스물 두 번을 더 돌았다. 언제로부터? 인간으로 태어나 신으로 죽은 이의 탄생으로부터.


서른일곱에 죽었다니, 인류는 천구백팔십구년을 그 없이 보냈다.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나. 그는 제 아비보다 큰 인기를 얻었다. 도시와 나라를 세웠다. 국경을 넘어 수많은 집을 얻었다. 못에 박힌 제 형상을 세상 온 곳에 두었다. 그 집들마다 하루씩 지내려도 수천 년은 더 필요할 테다. 나는 단언할 수 있겠다. 오늘날 그보다 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 그를 서울 복판의 공원 벤치에서 만났다. 그는 넝마를 덮고 누워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왜 저런 걸 올려뒀어, 앉지도 못하게. 신발만한 개를 끌고 지나는 여자가 그를 보며 말했다. 괜한 핀잔을 들어가며 그는 작은 몸을 더 작게 웅크렸을까. 전날 쏟아진 비를 그대로 맞았나. 볕이 좋은 날에도 몸을 펴고 일어서질 못한다. 얼마를, 얼마 동안을 그는 그렇게 있어왔을까. 수십 명쯤 오가는 너른 공원에 그가 누운 벤치만 딴 세상이다. 다가오는 이 없는 시간을 남몰래 견뎌가며 그가 움켜잡은 건 빛바랜 넝마뿐이다.


무려 천구백팔십구년이다. 천구백팔십구년이 흐르는 동안 그를 따르겠다 맹세한 이만 천구백팔십구만의 수십 배쯤 되었을 테다. 그들은 어째서 그를 그곳에 버려두었나. 역사에서, 공원에서, 도서관에서, 나는 그와 닮은 이를 본 일이 있다.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주택에서도, 하루에 두어 번만 차가 드나드는 빈집 가득한 마을에서도, 얼굴 검고 말씨 험한 이들 사는 벌집촌에서도, 늙은 부모 한숨 쉬며 앉은 장애시설에서도, 흐린 눈에 콧줄 꿰고 누운 노인들 곁에서도 나는 그를 본 것도 같다. 천구백팔십구년이 흐르는 동안 멸시받고 추위에 떨며 외롭고도 쓸쓸하게 그 벤치에서처럼 그는 조금씩 낡아갔던 것일까.


그의 유언은 세상 모든 책 중에서도 가장 널리 팔렸다. 양장이고 금장이고 온갖 언어에 온갖 판형으로 비싸게도 팔렸다. 그 유언이 어찌나 유명한지 그의 제자가 아닌 나도 그의 유언들을 기억한다. 호화로운 성전에 불을 지르고 낮은 곳에 임하라고 하였다. 너희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 유언이 어찌나 생생한지 드러누운 그 앞에서 그 말들을 떠올렸다.


딱딱하게 굳은 그 곁에 가만히 앉아 생각한다. 그가 지금 살았다면 어디에 있을지를, 이 시대 가장 귀한 영혼이 무엇을 하려들지를 생각한다. 붉은 전구 빛나는 십자가들 아래에도, 한강뷰 탁 트인 아파트 창가에도, 강변북로 내달리는 고급진 자동차 안에도 그는 없을 것이다. 젊은이들 가득한 세련된 카페에도,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곳들에도 그는 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죽음을 보고 듣는다. 경찰서에, 법정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아내를, 남편을, 아이를 죽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흔하게 들려온다. 너무 사랑하여 목을 조르고, 베게로 누르고, 약을 먹이고, 밀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인터넷 창만 켜도 들려오는 수많은 사건들, 나는 눈을 감고 더 좋은 이야기로, 더 밝은 세상으로, 더 위로 더 위로만 향한다. 낮은 곳을 떠난다.


발등에 구멍 뚫린 그가 넝마를 끌어안고 누웠다. 그 형상을 다듬고 다듬어 벤치 위에 올린 이가 호통친다. 나는 나의 안락이 민망하다.



2022. 1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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