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굳바이, G7

단상

by 김성호

내가 자주 듣는 잔소리 3개가 있다. 하나는 연애하란 것이고 둘은 연락 좀 잘 받으란 것이며 셋은 폰바꾸란 것이다. 개중 가장 쓸모없는 잔소리가 폰바꾸란 것이다.


돌아보면 난 늘 핫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첫 폰을 샀는데 당시 유행이 좀 지난 폴더폰 lg-kp3000이었다. 통화를 끝내고서 스냅만으로 턱하고 닫을 때의 기분 때문에 나는 그 폰을 애정하였다.


두 번째 폰은 2007년 나온 LG 싸이언 아르고폰이었다. 시장에서 외면된 기종이지만 실패작은 결코 아니었다. 전면 터치스크린에 수신감 좋은 DMB, 꽤 높은 화소의 카메라와 그림판 기능은 유행을 타지 않는 실력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특히 바코드를 찍으면 바로 인터넷 책 정보창으로 연결되는 기능은 헌책방에서 어마어마한 장점으로 활용됐다. 당대 이런 기능을 갖춘 폰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내가 가장 아꼈던 통화들은 대부분 아르고폰으로 이뤄졌기에 나는 이 폰을 특별히 아꼈다.


취업을 하고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게 문제가 됐을 때 세번째 폰 베가아이언2를 맞이했다. 팬텍의 2014년 작으로 당대 최고 배우이자 뜨거운 스캔들의 주인공이던 병헌이형이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고 홍보한 메탈폰이었다. 벽에 던져도 깨지지 않는 단단함과 괜춘한 방수력이 나의 폰으로는 적격이었다. 기자생활과 항해사시절을 거치는 동안 전국, 나아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온갖 고난을 이겨냈다. 남보다 몇년 늦게 가진 첫 스마트폰이었으나 나는 늦은 관심을 그에게 충분히 쏟아주었다.


나의 네 번째 폰은 LG G7 ThinkQ다. 2018년 출시된 이 폰을 나는 이례적으로, 물론 중고였으나, 그 해에 곧장 구매했다. 나와 인도양과 대서양, 북해와 수에즈, 지중해를 오가며 50여개 항구를 돈 베가 아이언2가 수명을 다한 탓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가장 절망적인 시절을 G7과 함께하게 되었다. G7은 방탄소년단이 정식 모델이었는데 뭐랄까 좀 주류폰을 쓴다는 인상까지 안겼다. 기자일을 했던 데다 캠퍼나 백패커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서 아이폰은 쓸 수는 없었고 갤럭시보다야 G7이 주는 이미지가 낫다고 여기기도 했다. 배터리를 2년마다 갈아줘야 하는 건 아쉽지만 다른 폰에 비해 인터넷 연결 시간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열일한 폰이라 해도 좋겠다.


나의 폰역사를 종합하면 나는 언제나 당대의 비주류 폰을 썼다. 수십명씩 모여도 나와 같은 폰을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고, 심지어는 같은 회사 폰을 쓰는 경우도 보기 어려웠다.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이폰이나 갤럭시나 그 걸로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 데다 내 폰으로도 내게 필요한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내겐 화질좋은 사진이나 영상통화나 더 빠른 인터넷 같은 건 필요가 없다. 그저 확실한 전화와 문자, 인터넷 수신과 안정적인 통화 음질, 적절한 타이핑과 충전 정도만 보장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폰으로 내가 아끼는 글 몇 편을 적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 몇을 굴복시키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진심 어린 감사와 사과를 받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이 폰은 내가 구할 수 있는 다른 어느 폰보다도 귀했다.


이제 나는 다섯 번째 폰을 맞이한다. 앞선 네 개의 폰과 마찬가지로 나의 정보통신 담당관에게 단단하고 방수와 녹취가 되며 무던한 녀석을 중고로 구해달라 하였다. G7을 잘 쓰고 있었으나 어머니의 폰이 보통의 것보다 너무나 험하게 다뤄져 고장이 났으므로 일단 내 G7을 넘기기로 하였다. 나의 정통담당관은 데이터를 모두 옮기고 각자의 성향에 맞게 최적화작업을 하고 보호필름과 케이스까지 갈아준 뒤 두 개의 폰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나의 G7은 어머니의 것이, 갤럭시 S10은 나의 것이 되었다.


내 가장 슬픈 시간을 견뎌주었던 G7은 내 어머니의 가장 쇠락한 시간도 받아내야 할 것이다. 이 폰이 인간의 형태로 내 앞에 선다면 나는 그 앞에 무릎 꿇고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와 사과를, 또 부탁이며 기대를 전할 밖에 없을 것이다. 손바닥 만한 폰 하나로 세계와 통하는 시대, 이 작은 물건이 책임져왔고 또 책임져야 할 과업이 너무나도 커서 나는 문득 나의 존재를 초라하게 여긴다.



2022. 1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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