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쓰신 기자님이라고 들었어요."
따라 나온 이가 말했다. "쓰신 글 정말 잘 읽었어요."하는 그의 말에 "네, 뭐." 하고 말았다. 막 비가 쏟아지려는 참이었다.
그는 다시 "이 영화는 보셨나요?"하고 묻는다. <정태춘, 아치의 노래>는 두 번이나 보았다. 정직하게, 또 건강하게 나이들어 가는 이 백발의 가수를, 바하 캘리포니아부터 정동진까지를 노래하는 이 단단한 영혼을,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 내리면 다음 상영관으로 옮겨가기 어려우므로 나는 폐막식만 보고 자리를 뜨려던 참이다. 다른 영화를 보시나요 묻는 그에게 <로제타>를 보려 한다 답했다. 그는 또 나를 기자라고 부르며 나간 기사를 잘 보았다고 말한다. 기자가 아니라 평론가고 기사가 아니라 평론이지만, 그깟게 무어 중요한가 바로잡지 않는다.
명함을 줄 수 있느냐는 그에게 내밀 것이 없다. 평론 하나에 만오천원 삼만원 처주는 인터넷 매체 말고는 지면 하나 남지 않은 삼류 글팔이 신세다. 영화기사 댓글창은 막힌 지가 한참이고 불러주던 매체들도 죄다 사라졌다. 그나마 남은 원고료는 뚝뚝뚝 떨어지니 이따금은 글 한 편에 이천원이 책정되는 날도 있는 것이다. 저 하찮은 글도 몇만원은 더 처주는데 어째서! 이따위 질투나 할 바엔 이쯤에서 그치자고 나는 또 한참을 고민하는 것이다.
붙드는 건 아주 오래된 기억이다. 몹시 뜨거워서 읽는 이를 들끓게 하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나는 쪼르르 달려가 그에게 말했었다. 담담한 어조로 차츰 적시다가 마침내는 울컥 하고 울음을 울게 하는 작가를 만난 날도 나는 그를 찾았었다. 이 사람 글엔 희망이 있다고, 냉철함 가운데 분명한 열기가 있다고, 이런 작가는 정말이지 흔치 않다고, 그래서 좋아할 밖에 없다고, 그렇고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다. 그는 가만히 내가 읽어주는 문장을 듣다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당황한 나를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야, 그 한 마디 말이 십수년이 다 되도록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글쟁이는 그래서 쓰기를 멈추지 못했다. 나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런 찬사를 받았던 사람은 절대로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를 보낸 게 벌써 한참 된 일이다. 그 존재 자체가 영영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고야 말았다.
떠난 이를 떠올리니 그저 걷고만 싶어졌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뚝 흘러내린다. 나는 그 빗속을 한참 동안 걷는다. 일기예보도 보지 않고 나온 무신경함을 탓하다가, 우산 하나 없는 내가 감사받는 일을 한다는 게 우습다는 생각에 닿는다. 공짜로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반겨주기까지 하는 이 영화제가 내겐 도리어 반갑다. 내가 쓴 글을 집중하여 읽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유명한 평론가가 내버려두는 영화제가 세상에 이토록 많다는 것도 그렇다. 그리하여 내 무딘 글이 누군가에게 여적 닿고 있는 게 아닌가. 비처럼 내리는 생각들을 어깨에 얹고서 상영관에 도착하니 수녀님과 관계자들이 일어나 맞이한다. 내가 가장 먼저 온 관객이라 하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직접 끓였다며 보온병에 든 뜨거운 차를 부어준다. 짜이티라고 인도의 전통차라 하였다. 컵을 쥔 손으로 뜨거운 것이 차오른다. 나는 그것이 감사인가 하였다.
2022. 11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