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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빌어먹을 떫은 감 같은

단상

by 김성호


말하자면 올해는 몹시 떫은 감 같은 것이었다. 먹어본 중 가장 떫은 감이어서 처음엔 그것이 불행의 맛인가도 하였을 정도.


서른이 후우우울쩍 넘어서 일년이 넘게 백수로 지낸단 건 불안한 일일 밖에 없다. 그건 나처럼 나 잘난 맛에 사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백수생활이 길어질 수록 두고봐라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하는 마음에도 쩌억쩌억 균열이 이는 것이다. 자그마한 상금들을 벌어오는 소설은 내가 낳았다 부르고 싶지도 않을 정도, 그나마 좀 나은 녀석들은 어째서인지 좀처럼 인정을 받지 못하여 내가 정말 가치가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가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새로 빚은 작품이 별볼일 없는 얼굴을 드러낼 때마다 나는 이제야말로 이력서를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이르고 만다. 그때마다 아직은 더 갈 수 있다 스스로를 다잡지만, 그것이 옳은 결정일지를 결론이 날 때까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따금씩 손을 내밀어 오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주제에 눈이 높은 나는 사자는 굶어도 풀은 뜯지 않는다고 몸을 일으킬 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자인 줄 아는 물소거나 마른 웅덩이에 갇힌 송어 쯤 되는 것이라면 이번 생은 틀렸다고 자조할 날도 멀지는 않았을 테다. 몇달 전엔 자리를 제안해온 어떤 이가 나의 거절을 듣자마자 네까짓 게 잘나봐야 얼마나 잘 났느냐고 막말을 쏟아낸 일이 있었다. 또 어느 이는 오갈 데 없는 백수이니 하잘 것 없는 조건에도 너따위는 감지덕지 하여야 한단 인식을 감추려 하지 않았는데, 나는 우러러 본 일도 없는 이에게 하대당하는 순간의 감정을 내 소설에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하여 진지하게 들여다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꼭 두 번의 이력서만 쓴 것인데 하나는 내자마자 차였고 다른 하나는 면접까지 보고도 까였으므로 내가 흔치 않은 인재라는 자부심도 이불 속에 누워 상상딸을 치는 것이나 진배 없는 일일지 모르겠다.


기실 여기까진 떫은 맛이라 할 수도 없다. 얼마간은 스스로도 불안을 즐겼을 정도니까. 등 뒤에 흐르는 물을 두지 않고서야 어찌 젖먹던 힘까지 내보겠는가, 그런 낭만적인 마음가짐을 늘상 깔고 앉았던 것이다. 걷지 못하게 된 발레리나나 웃기지 못하게 된 코미디언이 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나는 펑펑 울며 보았었다. 벼려진 문장에다 반듯한 책상을 갖고서도 읽힐만한 글을 쓰지 못한대서야 글쟁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뭐 대충 그런 마음이었는데 올해 터진 일들은 내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였다. 어머니는 파킨슨을 얻으셨고 아버지는 죽다 살아나신 게 얼마 전 일이다. 나는 아버지가 누운 병실에서 자꾸 확답을 달라 보채는 어느 회사의 제안에 아 거 귀찮게 좀 마소 하는 말을 못하고 쩔쩔매기만 하였다. 몸은 왼편으로 가는데 마음은 오른쪽에 묶여 있으니 귀신이 되거나 몸이 찢기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두 군데나 찔렀다가 네까짓 게 어딜! 하고 차이긴 했어도 나는 내가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런 마음이면 끝인 거라고, 그렇게 되면 살 필요도 없을 거라고,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나를 아껴왔던 것이다. 그러나 더는 그 방식이 유효할 수 없었다.


병상엔 아버지가 누웠고 나는 그가 없으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지탱할지를 두려워했다. 골방에서 머리만 커진 한심한 작자가 되어서는 노인이 맡아온 중한 일을 이어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니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건 다른 무엇이 아닌 것이다. 나는 감히 나따위가 세상에 대고서 무언갈 소리쳐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를 밤새워 의심했다. 아침이 되어 고개를 들고 나는 가만히 세상을 바라봤다. 각자의 전장에서 분투하는 수많은 인간들이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 전엔 하잘 것 없이 보였던 이가 오늘은 늠름하게 보이고 어제까진 제법 훌륭하게 여기던 이가 이제는 그렇게 가벼워보일 수가 없다. 나는 하룻밤새 훨씬 더 하찮아졌다.


퇴원을 앞두고 동생이 집에서 감을 몇 개 챙겨왔다. 나는 그렇게 떫은 감을 먹어본 일이 없었다. 너무 떫어서 순간 불행이 이런 맛일까 싶었다. 그러나 그 떫음이 혀를 감싸고 있는 동안 나는 밤새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생각하였다. 이 빌어먹을 떫은 감같은 글을 꼭 써야만 하겠는데, 하고.



2022. 1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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