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아픈 아내를 홀로 둘 수 없어 성당에 가는 대신 평화방송을 보고 미사를 드린다 했다. 파킨슨을 앓는 나이롱 신자 엘리자벳은 집에 온 아들에게 이걸 가져다주랴 저걸 가져다주랴 천천히 그러나 분주히 움직인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비안네 선생께선 요상하게 발꼬락을 들고 걷는 그녀를 놀려먹길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이라면 날렵하게 받아칠 그녀지만 말도 행동도 뭐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지 답답해하다가는 그냥 울음을 울어버린다. 요즘엔 하도 자주 있는 일이어서 누구도 그 울음을 신경쓰지 않는다.
품성이 우아하여 늘 격식을 따지시는 비안네 선생께선 장례에도 관심이 많다. 신자가 영면하면 천주교에서 사람이 나와 식장에서 기도를 하고 성당에서도 장례미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는 아들딸이 모두 종교를 갖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운듯 자식들이 천주교의 절차를 몰라 예식이 엉망으로 진행된 사례를 꺼내놓는다. 얼마 전만 해도 비안네를 영영 잃어버리는구나 했던 나는 그 말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부모의 신앙을 자식들이 받지 않는 건 열매 맺지 못한 나무와 같다는 말이 마음에 탁 걸리고 만다. 재미가 없는 수능을 보고 관심도 없던 대학에 간 일로 나의 효도는 끝났다고 여겼건만 결혼도 못해 아이도 못가진 내가 비안네 건강할 적 성당이라도 다녀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은 내겐 영 흥미가 없는 것이어서 도무지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수의 삶이야 존경을 넘어 경외롭기까지 하지만 신자들이 세운 교회며 그들이 써나간 역사 만큼은 도무지 존중하기가 어렵다. 오늘 방송만 해도 그렇다. 억지로 경건한 음성을 내며 온갖 상징으로 범벅된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 나로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처음 누운 예수의 탄생에 경배를 드리겠다며 화려하기 짝이 없는 잔을 들어 올리는 게 내 눈에는 영 아니올시다다. 잠시 상상만 해보다가도 아 나는 도저히 효자는 못되겠구나 고개를 가로젓고 마는 것이다.
존경하는 비안네 선생께선 요즈음 성당에는 젊은 여성들도 제법 많다고 방향을 틀어보시지만, 그 말이 맞다면 평화방송에 나오는 여성은 어찌하여 죄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 뿐이겠는가. 김태희 김연아가 임자 없던 시절에도 안 나간 성당을 이제와 다닐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튼 나는 서울 목2동 천주교구의 김 다니엘이 될 생각은 없어서 그냥 우리집 신자는 비안네 하나로 만족하기로 한다. 도시도 의인 열이 있다면 멸망을 피하는 것인데 가정집이야 신자 하나만 있어도 처단을 면할 것이 아니겠는가.
무튼 이천스물두번째 생신을 축하드리고 비안네를 살게 하심에 온 마음 다하여 감사드린다. 즐거운 대축일, 행복한 연말되시길!
2022. 12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