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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유튜브를 하기는 해야 할텐데

단상

by 김성호

모임에 나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다보면 유튜브 꼭 해보세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럴 때면 속으로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마음이 불쑥 솟는 것이다.


지난해였나. 회사를 그만두겠다 마음 먹었을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제정세 이야기가 나왔다. 온갖 이야기 가운데 미국의 전쟁이야기들이 지나가는데, 협력하지 않으면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라고 미국이 파키스탄에 엄포를 놓았던 얘기가 나왔다. 아프가니스탄과 북으로 국경을 대한 파키스탄은 바다와 면해 있어 미국의 전쟁수행에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요충지로, 그 말이 나온 건 미군 진입이 논란이 되던 시점이었다. 어떤 놈이 그런 일은 또 없을 거라길래, 나는 그런 일은 역사에 흔하다고, 그런데 정말 길을 빌려준 사례는 많지가 않았다고, 이 무식한 녀석들 앞에서 또다시 떠벌이기 시작했다.


길을 빌려 적을 친다는 건 동양사에 중국 춘추시대부터 등장한다. 진나라가 우나라 길을 빌려 괵나라를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기습해 멸망시킨 일이 너무나 유명하여 가도벌괵의 책이 삼십육계의 스물넷째가 되었을 정도다.


이 책이 한반도에도 익숙한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킬 때 가도정명의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선봉 고니시 유키나가가 부산성 안에 들인 글자도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자면 싸울 것이고 안 싸울 거면 길을 내놔라 라는 것이었다. 이에 송상현이 패를 내던지니 적힌 글자는 전사이가도난, 죽긴 쉬워도 길을 주긴 어렵다는 좆간지 답문이었다.


몽골의 원나라가 베트남과 세 차례 전쟁을 벌일 때도 가도의 책이 등장한다. 군량창고이자 서로 통하는 교역로를 가진 인도차이나 반도에 눈독을 들인 쿠빌라이칸이 아직 잔당이 남은 남송을 완전 정벌하겠다며 길을 빌려달라 요구한 것이다. 베트남은 이를 거절하고 전쟁을 벌여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이 원나라를 개박살낸 역사를 썼다.


그 유명한 나관중 <삼국지>에도 가도의 책이 등장한다. 적벽에서 조조를 혼쭐내고도 제갈량에게 형주를 빼앗긴 주유가 정촉을 명분으로 형주를 지나겠다 한 것이다. 당연히 제갈량이 이를 알고 농락하니 주유가 피를 토할 밖에 없는 일이다. 공명이 우나라 궁지기보다 못하지 않은데 이딴 책을 썼을 리가 없으나 주유가 억울하여 피를 토하는 장면이 제법 극적으로 다뤄지긴 한다.


물론 진짜 길이 필요한 때도 있었다. 미국이 아프간으로 가겠다며 파키스탄에게 길을 내놓거나 석기시대로 돌아가거나 택일을 요구한다거나, 파라과이가 우루과이를 치겠다고 아르헨티나에게 길을 내달라고 한다거나.


무튼 이런 이야기를 떠들다보니 친구녀석이 야 너 유튜브는 왜 안 하냐 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발끈하여 너도 내가 그쯤으로 보이냐 하였는데 그는 몇개 유튜브 채널을 보여주며 유튜브도 유튜브 나름이라고, 덮어놓고 무시하는 건 너답지 않은 일이라고 훈계를 하는 것이다. 그가 보여준 영상의 질이 제법 좋아서 나는 적잖이 놀라고야 말았다.


그는 당장 유튜브를 시작하라 했고 나는 무얼 먼저 하여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이 채널명부터 정하라는 것이다. 나는 만 하루를 곰곰히 생각하여 그에게 명칭을 보내었다. 좌우로 찢겨 소모적이고 한심한 논의만 해대는 인간들에게 존경하는 작가처럼 싸다구를 날리겠단 뜻으로 좌지우웰이라 하겠다 하였다.


그런데 웬걸. 그는 대뜸 나는 진지하였는데 너는 맨날 왜 그딴 식이냐고 뭐라뭐라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남으로 찍혀 있는데 fuxx이나 잘 되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수긍치 못하고 이 제목이 아니면 안 한다 엄포를 놓았다. 그리하여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까지 묻게 되었는데 어느 하나 내 작명의 탁월함을 이해치 못하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유튜브를 안 한 이유.



2022. 1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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