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로 만나는 책모임
메타버스는 처음이었다. 테이블리더가 던져준 링크로 접속하니 땅딸막한 내 아바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아바타가 내게 와서는 저를 따라오라 말했다. 그가 테이블리더였다. 오늘 모임은 회의실에서 열린다며 큰 테이블에 의자가 열개 쯤 놓인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늘어선 의자 중 하나에 내 아바타를 올려두었다.
참석자는 모두 넷이었다. 모두 여덟이 모이기로 했으나 절반은 오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하는 편한 만남은 그만큼 어기기도 쉬운 것인가. 테이블리더는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엔지니어였다. 나머지는 여자였는데 한 명은 공무원이고, 다른 하나는 막 고등학생이 된 여자아이였다. 그 친구는 선생님이 추천하여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에 나왔다고 했다. 독서모임을 제법 가져보았지만 꽤나 특이한 구성이었다.
테이블리더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가져온 책은 <슈퍼 펌프드: 우버 전쟁>이다. 운수업의 일대 혁신이자 공유경제의 선도업체였던 우버의 위기와 극복을 쓴 책이라 했다. 제목인 '슈퍼 펌프드'는 창업자인 트래비스 캘러닉이 강조한 개념으로,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한 상태를 가리킨다. 성차별적 문화부터 온갖 추문, 캘러닉의 퇴출로 이어지는 우버의 위기는 오로지 승리와 숭배로 점철된 슈퍼 펌프드 기업문화에 기인한 바 크다. 우버의 흥망성쇠에 별 관심 없이 살던 나는 그저 지난해 찾은 베트남에서 어플을 깔고 우버 택시며 바이크를 잡아탄 일만 기억할 뿐이다.
다음 발언권을 얻은 이는 한창 십대의 중간을 지나는 친구다. 이 친구는 두 권의 책을 소개했는데 처음 이야기한 책이 <가고 싶은 길을 가라>가 되겠다. 프랑스 작가로 과학과 철학 등 다방면의 이야기를 전하는 로랑 구넬의 짤막한 소설이다. 2009년 나와서 일찌감치 절판된 책이지만 그녀는 이 책을 너무나 애정하여 중고서점에서 잔뜩 구해다가 주변에 선물하곤 한다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가격은 딱 천 원 남짓, 배송비가 더 크지만 한 권을 주문하였다.
주문한 건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 책이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말이었다. 다들 택하곤 하는 잘 닦인 길과 내가 걷고픈 조금 위험해 보이는 길 사이에서 고작 열 몇 살인 이 친구는 제가 가고픈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고 고백했다. 그 결정에 이 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삶을 바꾸고 사람을 이끄는 이야기라니, 세상에 그런 글은 그리 흔치만은 않은 것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꼭 한 번 읽어 보아야겠다 그런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글을 써내야겠다고.
이 친구는 씩씩한 말투로 다음 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톰 필립스가 쓴 <인간의 흑역사>다. 그녀는 작가의 문장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고 하였다. 열 몇 살짜리가 작가의 문장을?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는 내가 마크 트웨인과 찰스 디킨스와 빅토르 위고와 도스토옙스키와 헤밍웨이와 김훈과 이문열과 조정래를 읽던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벌써 한참을 늙어버렸구나 싶었다. 나조차도 모르게.
영국의 언론인인 톰 필립스는 특유의 냉소적이며 재치 있는 시선으로 역사를 논한다. 그것도 인간이 인간한 흑역사들만 모아 살핀다. 그 속에서 인간은 국부를 탕진하고 가지 않아야 할 곳으로 나아가며 기름진 땅을 못 쓰게 만든다. 책장 사이사이 인간이 외면해온 실패와 오욕의 역사가 거듭된다. 인간의 욕심엔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 않던가.
다음 이가 가져온 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다. 서른한 살에 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참담하게 실패한 뒤 그 부록집 정도로 써낸 에세이 <여록과 보유>에서 여러 명언을 발췌한 책이다. 우울하고 괴로운 삶으로부터 저를 지키기 위해 명랑하고 즐거운 생활을 끝없이 추구한 사내, 젊디젊은 쇼펜하우어의 비명들을 한 권 명언집으로 묶은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고루하고 지루한 철학책들 사이에서 선명하고 신선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그의 에세이며 명언들이 오늘을 헤매는 젊음들에게 살아갈 지혜를 준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가. 기실 세상의 부조리며 의미 없음을 생생히 느끼는 인간만큼 처절하게 즐거움과 행복을 구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나는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을 소개했다. 영 실망스런 문장이지만 실린 과학적 지식만큼은 읽고 또 읽어도 흥미로운 게 많다. 바로 직전에 읽은 칸트와 오늘의 물리학 사이에 특별한 관련성이 느껴진단 점도 흥미롭다. 칸트는 세상 모든 존재를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 세워 실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김상욱 박사는 말한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고 들리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고. 모든 사물엔 나름의 진동수가 있고 모든 색깔엔 온도가 있다고 말이다. 초음파며 적외선과 자외선까지, 세상엔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존재하는 세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과학은 그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일이며 그로부터 앎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오래전 갈라진 과학과 철학이 다시 만난다.
메타버스 위에서 사람과 책을 만난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기술의 끝에서까지 다른 인간을 향하는가. 슈퍼 펌프드 정신이 우버에 위기를 가져오고, 불행과 절망 가운데 선 사내가 명랑함과 행복을 논하며, 과학과 철학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인간은 가고 싶은 길과 가면 좋을 길 사이를 서성이는 것이다. 기왕이면 흑역사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메타버스 위의 책모임도 결국은 모임이었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