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읽고 나누기
이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뉴턴을 넘어 양자역학까지 나아가는 <떨림과 울림> 속 이야기를 이 시대 범상한 우리가 어디까지 해낼 수가 있을지 궁금한 마음부터 들었다. 말하자면 암흑물질은 이런 게 아닌가요 라거나 그래도 빛을 입자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요 따위의 선 넘는 대화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겠구나 은근한 기대가 들었던 것이다. 내복을 입지 않고 나온 걸 후회할 만큼 오들오들 떨리는 날씨에도 합정까지 나온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우선은 책에 대한 총평부터 나누었다. 다들 과학이 어렵고 뭐가 어떻고들 하였는데 나는 과학이 어렵다기보단 문장이며 글이 아쉽다는 인상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못쓴 글은 아니지만 깨달음이며 의미를 얼기설기 붙인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게 느껴졌다. 스티븐 호킹의 여러 책을 읽었을 땐 훨씬 흥미진진했던 것이 대중에게 쉽게 소개한 에세이에선 안개 자욱한 숲을 걷듯 뿌옇기만 한 게 영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매번 잘 짜여진 커리큘럼대로 진행하던 이 모임은 웬일인지 그냥 가는 대로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대신 참석자한테 한 가지 씩 주제를 가져오라 공지했던가본데 언제나처럼 나는 처음 듣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름의 감상은 있던 책이라 나는 첫 주제를 가볍게 던졌다. 직전에 읽은 칸트와 이 책이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말이다. 칸트는 세상 모든 존재를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 세워 그 중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개념을 철학 바깥으로 밀어내고자 했다. 그런데 물리학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알린다. 가시광선 너머로 적외선과 자외선이 있고, 청음이 가능한 음역대 너머에도 초음파가 있다. 세상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진동수를 갖고 세상 모든 물체가 저마다의 온도를 갖는다고, 심지어는 우리가 그를 느끼지 못함에도 말이다. 인간의 지각이며 지성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무엇이 있다고 믿을 수도 있어야 한다.
저마다 온갖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이 책을 추천한 이가 이 날의 화두가 될 이야기를 꺼낸다. 저는 변치 않는 사랑을 믿는다고. 사랑이라니 상상도 못한 답이었다. 심지어는 불변의 사랑이라니 말이다. 20세기의 마지막에 그 박완규조차 천년의 사랑을 겨우 노래했을 뿐인데, 여기 변치 않는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 여적 남아있다니! 그로부터 우리는 한참을 사랑이며 연애며 그 근처의 이야기를 오고갔다. 가장 신선한 건 학점이 4.3만점이라 얘기하는 걸로 졸업한 학교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 금시초문인 나는 저도 모르는 새 뽐내기 좋아하는 사내가 되진 않아야겠다고 학습하였다.
맞은편에 앉은 이가 또 사랑 이야기를 꺼낸다. 대충 할까 말까 고민되면 고백하란 것인데, 과학에세이의 저자가 이런 이야기로 글을 맺은 이유는 약간의 유머였을 테지만 이 테이블에선 진심인 모양이다. 다들 저마다의 고백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누구는 아사모사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라 하였고 또 누구는 그래도 확실한 고백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나는 역시 뒤쪽이 좋다. 자고로 아사모사는 오래 공들여 차근히 스며드는 이들의 방식이 아닌가. 나라면 열세에서 역전을 도모하는 편을 택할 게 분명하다. 그게 더 재미있지 않은가. 실패한다면 또 도전하면 되는 것이고.
과학 에세이를 가져와놓고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즈음, 한 여성이 다른 화두를 던진다. 이번에는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다. 외부 조건에 따라 물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 요컨대 이성에게 느끼는 호감이며 온갖 자잘한 감정이 사랑이 되는 그 순간을 콕 집어 이야기하잔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이야기나 나오는 거지 당혹하면서도 나는 나의 상전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우리 테이블의 우아하신 분들께선 공감대며 취향이며 그런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나로선 영 모르겠수다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여 사랑하게 되었단 이도, 같은 영화를 애정하여 사랑하게 됐던 이도 있는 것인데 그게 정말 가능한가 말이다. 심지어는 정치색이며 가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나의 상전이란 그런 것들과는 영 상관이 없다. 말하자면 개꼴통에 엉망진창이라 아 안 된다 성호야 얘는 진짜 아니다 하면서도 어느 순간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 나의 사랑이고, 나의 상전이인 것이다. 앞에 말한 다른 이들처럼 취향이며 가치관이며 정치색 따위가 같아도 5점 5점 5점 합해 15점인 것인데 순간 아! 하고 마는 때는 계기판에 500점쯤 떠 있게 마련이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이에나들이 득달같이 달라든다. 그게 다 외모고 분위기를 보는 게 아니냔 얘기다. 보기야 보겠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어떻게든 항변을 해보려다 실패한다. 곁에 앉은 이가 그렇다면 대체 어떤 타입에 상전이를 하느냐고 물어온다. 그걸 알면 내가 상전이 후보들과 놀지 왜 여기에 있겠는가. 사랑이란 마음처럼 안 되는 것이고 나의 과학토론도 좀체 기대처럼은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과학이야기가 어디까지 떠내려가는가를 가만히 지켜보다보니 기실 이것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흘러가는 과학의 귀결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떨림과 울림>이란 제목도 떨리고 울렁이는 러브러브한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싶고.
엔트로피 이야기를 하니 맞은편에 앉은 이가 그 화두를 먼저 꺼냈단 기억이 난다. 경우의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선택이 우리를 더 엉망진창인 곳으로 이끌어가는데, 그런 선택의 순간들을 하나씩 이야기해보자는 거였다. 그는 수년 전 술에 절어 세 번인가 네 번인가 회사의 합격통보전화를 받지 못했던 날을 떠올린다. 그 전화를 끝까지 받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꿈에 더 다가섰을까. 또 다른 이는 유산된 손위형제와 저의 태어남을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무언가 철학적인 이야기와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나는 무언가 숙연한 기분에 말을 더하지 않는다. 내 삶을 바꿔온 수많은 갈림길을 돌아보며 그러나 나는 다시 산대도 내가 밟아온 길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을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동일한 전자가 형태만 바꾸어 세상 만물을 만드는 이 놀라운 세계에 대하여, 그리하여 세상이 자연발생적인가 신의 설계에 의한 것인가를 이야기했다가는 다시금 또 다른 이야기로 옮겨간다. 그리고 한 이가 인생의 허무함과 의미 있음에 대한 화두를 꺼내었고, 우리는 삶이란 정말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건지를 논하기 시작한다. 이 우주의 먼지 같은 미물인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간지가 나는 먼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열심히 설파한다. 맞은편에 자리한 이의 표현대로면 교양한다 정도가 될 수도 있을 듯한데, 나는 그 표현이 꼭 마음에 들진 않았으므로 썰을 풀었다 정도로 대신하겠다. 오늘도 나는 많은 썰을 풀었고 내 맞은편에 앉은 이는 소름이 돋았다고 말하였다. 그 소름이 호러에 가까운 것인지는 정신건강을 위해 캐묻지 않기로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는 말을 줄이자고 이루지 못할 다짐을 하였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