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정보광증의 세상을 헤매이며

우리가 정말 돌봐야 할 것

by 김성호

30분쯤 늦어버렸다. 늦게 다니는 건 딱 질색인데 늦는 날은 늦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불현듯 시계를 볼 땐 이미 출발해야 할 시간이 넘어가 있고, 평소엔 재깍재깍 올라오던 엘리베이터가 층층마다 한참을 멈춰있는 데다, 막히는 꼴을 못 봤던 도로에서 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 그렇다. 그럴 때가 있는 것이다. 남들에게도 그런 일이 닥쳤는가, 평소라면 비지 않던 이 모임 참석자가 모임 당일 두 명이나 취소를 했다. 사람이 줄수록 빈자리도 큰 법이다. 어서 빨리 달려가야지, 마음이 급해진다.


도착하니 텅 빈 카페에 셋이 모여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렇지, 누가 늦을 땐 읽으며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내가 남이 늦는 일에 그나마 관대한 건 어딜 가나 책을 끼고 다니기 때문이다. 오늘 좀 많이 늦었으나 다들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좀 놓이는 기분이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는 이 시간에 꽤 멋진 독서를 했을지도.


누가 먼저 소개하실래요 하는 물음에 어김없이 매번 먼저 손을 드는 이가 있다. 그는 이번에도 제가 읽은 책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제목 때문에 집었다는 그 책은 <단 한번밖에 살 수 없다면 인문고전을 읽어라>다. 하나마나 한 얘기를 빼고 나면 <인문고전을 읽어라>가 될 것인데, 독자를 붙드는 건 아마도 그 하나마나한 소리였을 테다. 그러고 보면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을 때가 있고 쓸모 있는 것이 쓸모가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제목만 인문고전이지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그런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자기계발서를 딱 질색하는 나는, 지난해 <역행자> 이후 쏟아지는 '책이 삶을 바꾼다'는 그렇고 그런 서적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들고 온 이는 이 책으로부터 여러 흥미로운 대목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관계부터,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또 칭찬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가 등에 대하여 제법 인상적인 조언을 들었다는 얘기다. 내게도 자기계발서로부터 삶을 바꿔나갈 단서를 얻는 순간이 올까. 도리도리하려는 성급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섣불리 고개를 젓는 인간은 되지 말자고, 가만히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다음 책도 자기계발서다. 이번엔 심지어 물건너온 자기계발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란 제목이 붙은 이 책을 그녀는 좀처럼 정돈되지 않는 제 삶을 진정시키려 집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습관보다 삶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가 않다. 책은 습관이 가진 힘부터, 좋은 습관을 들이는 온갖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적어놓은 모양이다. 막연한 바람이며 기대를 잘게 썰어서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만들고, 이를 습관처럼 해내는 것이 삶을 더 나아가게 한다는 걸 좋은 습관을 가져본 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다.


운영자는 참석자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져본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책을 가져온 이는 운동하는 습관을 이야기하고, 운영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재깍 메모하고 찾아보는 습관을 말한다. 나는 역시 글을 쓰는 일이다. 예술이 예술임을 알았던 십대시절부터 나는 모든 예술적인 무엇에 내 나름의 글을 써 붙여왔다. 모든 책과 영화와 연극과 뮤지컬과 전시 등에 대하여, 심지어는 이 모임평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게 무엇을 전달한 특별한 것마다 나름의 감상을 표현하려 노력해왔다. 그 습관이 나를 글쟁이로, 평론가로, 기자로, 작가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습관이 나를 또 어딘가로 데려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 가서 누가 내게 습관이 무얼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고 말할 것이다.


습관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아주 오래 전 보았던 만화 한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생명을 걸고 싸우는 로마 검투사들의 이야기 가운데 재능도 무엇도 특출나지 않던 한 검투사가 제 연습장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무거운 것을 끌어서 자국이 깊게 패인 연습장이다. 그 광경 하나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내보인다. 그 장면을 본 뒤로 나는 습관과 노력이 고작 단어 하나로 말할 수는 없는 거란 걸 알게 되었다. 습관은 삶을 바꿀 수 있다. 습관이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된 자기계발서들 또한 그럴 수가 있는 거겠지. 정말이지 무엇이든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꿔낼 수 있는 것이니.


다음은 내 차례, 내가 가져온 책은 도리스 레싱의 <다섯 째 아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발간한 영국 고전으로, 세대를 넘어 오랜 생명력을 얻어낸 작품이다. 책은 인간이 제 이성으로 자연이든 비이성이든 세상의 온갖 것을 모두 개척할 수 있다는 오만을 완전히 짓밟는다. 교육으로 개선할 수 없는 아이, 문명으로 교화할 수 없는 인간이 있지는 않느냐고, 우리가 애써 그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묻는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남녀는 결혼을 해야만 하고, 맺어진 부부는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고. 부모와 아이로 이어진 가정이 가장 완전한 상태이기라도 한 양,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아이가 가정을 완성시키고 마침내는 행복하게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어떤 아이는 악하고, 어떤 결혼은 평온한 삶을 파괴하는 일이 아닐까. 인간은 우주며 세상은커녕 제 운명조차 감당키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1960년대 런던에서 다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해리엇은 제가 밴 아이에게서 본능적인 이질감과 공포를 느낀다. 그건 꽤나 정확한 것이어서 그녀에게서 태어난 벤은 정말이지 누구와도 다른 독특한 인간으로 자라난다. 그의 부적응이며 이상 징후들을 교사며 의사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해리엇이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아서, 혹은 아이의 지능이 남보다 낮아서 쯤으로 뭉뚱그려 넘어갈 뿐이다. 그러나 해리엇과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안다. 그는 전혀 다른 인간이다. 우리가 아는 선악 개념으론 구분할 수 없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만큼이나 분명한 차이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이야기하는가. 때로는 알기 싫어서, 때로는 아는 게 두려워서, 무엇을 안다고 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게 되지는 않는가. 오은영과 강형욱 류의 척척박사들이 난해한 문제에 온갖 해답을 내놓는 동안 정말 풀기 어려운 많은 문제에 오답이 적히는 건 아닐까. 오로지 조금 아는 이들만이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모성애의 편도, 소외되는 아이의 편도, 시대와 체제의 편도 들지 않는 도리스 레싱의 자세가 이 소설에 시대를 건너오는 힘을 부여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영자는 이름부터 어려운 철학책을 가져왔다.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 이 학자가 <피로사회>를 쓴 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가 이전에도 이 작가의 책을 가져온 적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현대 한국 철학자의 책을 연달아 읽는 이라니 지하철 10량 가운데 한 명을 만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말하자면 귀인이다. 나는 귀인을 알아보는 사람이고.


그는 철학 하면 흔히 떠오르는 수많은 철학자엔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소크라테스부터 비트겐슈타인이나 데리다 정도에 이르는 수천 년의 철학사보다는, 또 나와 존재와 인식의 경계 따위를 논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철학의 도구로 세상을 논하는 게 재밌다는 말이겠다. 이 책을 집은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


<사물의 소멸>은 제목 그대로 이 시대의 사물이 소멸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물이 소멸하는 대신 정보가 떠오르고 있다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 팔로워를 늘리는 세태, 음식을 맛보는 것만큼이나 그걸 정보화해 기록하고 다시 그 정보를 접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는 뜻일까. 뭐 대충 온갖 것이 정보로 화하고 또 그 정보를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건 분명히 광증이라 불러 마땅할 테다. 펭수나 최준, 일본인 연기하는 개그맨에 대하여 만나는 모든 이들이 한 마디씩 얘기했던 것이나, <재벌집 막내아들>과 <글로리> 같은 드라마를 모두가 떠들어대는 건 한심함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한 광경이다.


책을 사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운영자는, 그러나 이 책이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각별히 인상적이었던 건 사물에서 정보로의 이행을 저자가 다분히 호들갑스럽게 설명했다는 표현이었다. 철학자의 호들갑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궁금해져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였다.


세상의 변화가 꼭 사물에서 정보로의 이행일 리는 없다. 그것이 어느 철학자의 눈엔 주된 세태로 보인 것일 테다. 이와 동시에 얼마든지 정보의 소멸이나 사물로의 이행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또 다른 방향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다름보다는 범주화며 획일화를, 또 의미를 끌어내는 작업을 즐기게 마련이다. 그것이 나와 너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는 성격유형검사(mbti)의 유행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고, 또 많은 범주화와 고정관념, 편견이며 분석의 틀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은 동일성에 환호하는 만큼 차이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닌지. 세상에서 가장 유사한 두 인간조차 자세히 뜯어보면 그 공통점만큼이나 차이도 많을 것이니. 나와 당신이, 벤과 그 형제들이, 정보로 표현되는 수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운영자는 오늘 시민들이 누리는 자유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늘어나는 건 그저 소비하는 자유일 뿐이란 것이다. 과거의 방식대로 인간을 가로막는 대신 소비를 더 원활하게 함으로써 그 결과로 자유를 축소하는 역설이 벌어진단 얘기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수많은 예능과 드라마, 그렇고 그런 온라인 콘텐츠들의 범람 가운데 진정으로 볼 만한 것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하면 끔찍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처음 예능에 자막이 입혀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인간이 그로부터 얼마나 한심해져왔는가를 슬픈 마음으로 돌이켜본다. 알고리즘의 지배를 이야기하는 운영자에게 나는 같은 문제를 더 일찍 고민한 켄 로치의 걸작 <자유로운 세계>를 추천한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는 것이나 독서모임을 하겠다고 불금 저녁에 멀리 나오는 것이나 죄다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더 빠른 정보 대신 더 깊은 앎을 구하는 것이며, 팔로워 대신 인간을 대하는 일이다. 지하철을 함께 기다리며 당일 취소되는 모임의 서글픔을 드러내는 그를 보고서 나는 모임을 지속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려 노력한다. 결국 이 자리에 왔던 누구는 모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또 누구는 다른 생각들이 제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열거했으며, 나는 굳이 함께 지하철을 타겠다고 내려와서 모임을 고민한다는 그의 의지를 북돋고 있는 것이다. 이 정보광증의 세상에서 우리가 정말 돌봐야할 건, 정보가 스쳐간 뒤에도 제자리에 남아 있을 좁고 약한 마음일 밖에 없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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