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죽음을 대하는 자세만큼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많지가 않다. 죽음은 삶과 괴리된 무엇일 수 없고, 모든 삶이 마땅히 도달할 귀결이자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 내가 누구의 죽음을 찾는 것은 그의 삶을 보기 위함이며, 그건 개인을 넘어 사회와 문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베트남의 장례문화는 한국인의 관점에선 이색적이고 조금은 기이하게 보인다. 중국과의 관계부터 유불선 삼교의 전래가 한국과 베트남을 놀랍도록 닮아지게 하였단 점을 생각한다면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이처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베트남의 보편적 장례는 유교문화권 대부분이 그러하듯 매장이다. 베트남 시골을 다니다보면, 굳이 시골까진 아니더라도 교외정도만 나가보아도 드넓은 논 가운데 무덤이 자리한 경우를 심심찮게 마주한다. 논이란 것이 물이 들어차기 쉬운 저지대의 습지인 데다 사람이 매일 같이 드나드는 일터란 점을 고려하면 무덤을 그 가운데 두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이 무덤은 외양 또한 독특하다. 흔히 보는 시멘트로 봉분을 발라두어 푸르고 노란 들판 가운데 눈길을 잡아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는 커다란 나라에서 죽은 이의 묘를 들판 가운데 봉분까지 두어 놓다보니 온 평야가 시멘트로 발린 묘로 가득하단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가장 너그러운 이의 시선에서도 그 광경이란 미관과는 제법 거리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특징적인 건 개장이다. 베트남에선 통상 3년에서 길면 5,6년 정도에 무덤을 열고 부패한 시신을 처리해 다시 매장하는 일을 거친다. 앞의 기간에 매장하는 것은 가묘이며 뒤에 묻는 곳이 정식 묫자리가 되는 것이다. 같은 장소에 묘를 쓰는 경우도 많지만 종교나 형편에 따라 공동묘지 등으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장은 부패하여 썩은 부분이 남아 있는 시신을 다시 꺼내어 뼈만 고르게 발라내는 일이다. 묘를 다시 열어 부패한 시신과 대면하는 일은 불쾌할 밖에 없는 것이라 이를 처음 접하는 이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죽음을 가장 멀리 두는 한국인은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얼핏 낯설고 괴이한 베트남의 장례문화는, 그러나 매우 인간적인 것이다. 제 터전 가까이에 조상의 묘를 두고 수시로 그 죽음과 죽은 이의 가르침을 생각하였던 조선조의 관점에선 더욱 그러하다. 우리와 다른 모습은 남방의 기후 때문인데, 이들은 시멘트로 묘를 발라 수해에 유실되는 일을 방지하고 묘를 다시 여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조상의 시신을 재수습하려는 수고를 했다 보아야 옳을 것이다.
언젠가 베트남에서 몇년을 보냈다는 어느 녀석과 베트남의 장례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는 그들의 장례문화가 후진적이고 괴이하다 여겼다. 외관을 해치는 일이며 논 가운데 아무렇게나 묘를 두어 농사에 불편을 겪는 일 따위가 모두 그렇다고 했다. 심지어는 집이나 가게 안에 사당을 두고 매일 같이 향을 피우고 꽃을 두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과연 누가 우리의 것을 빠르게 잃었는가 생각하였다. 그는 정작 한국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알고 있지 못했다. 한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지난 백여년 간 장례며 추모의 습속이 가장 급격하게 변한 나라다. 그 과정에서 철학이며 역사성 따위는 거의 개입할 여지를 갖지 못하였다. 명절에 얼마나 성적으로 불평등한 노동이 이뤄지고 세대간에 불화가 일어나는지 따위는 논의되면서도 그날 조상을 기리는 방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또 그것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담론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홍동백서란 정체불명의 말은 알아도 제례의 의미는 모르는 것이 나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기업화된 화장터와 명절에나 찾아볼까 말까한 무덤, 집 안에서 사라진 위패며 영정, 그저 구색만 갖춘 장례와 염은 모두 한국에서 죽음이 삶과 완전히 동떨어져 격리되었다가 필요할 때 소환되는 것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말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는 한국인은 지난 백년, 혹은 이삼백년 전 사람과 가장 달리 죽음을 맞이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 어느 관점으로 보면 오늘 한국의 장례문화야말로 괴이한 것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죽음을 가까이 두는 이가 현명하다 여긴다. 마침내 닥쳐올 일을 외면하는 것 보다는 죽음이 삶의 부분이며 완성임을 이해하고 그를 다루는 나름의 방식을 발전시켜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말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