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새벽에 일어나 바다에서 홀로 수영을 한 뒤 시내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참이슬 후레쉬에 치즈를 챙겨 바이크 안장 아래 넣고 남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20km 정도를 달렸다. 다행히 목적지는 구글 지도에 분명하게 떠서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다. 잠시 길을 멈추고 물을 때마다 누구나 금세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지난 여행에서 찾은 이들과는 달리 예르생은 나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예르생과 그의 묘는 이번 여행의 주된 목표다. 여행비를 마련하려 취재대행과 서평, 여행기 따위를 몇개 물어왔으나 하루이틀에 쳐낼 수 있는 것 뿐이다. 나는 예르생을 찾아 그의 지난 선택들을 생각할 것이다. 질병과 전란 가운데, 고통과 죽음이 흔한 땅에서, 그가 구하려 했고 마침내 구해낸 것을 향하여 나는 나의 여행을 떠나왔다.
예르생이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건 여러모로 흥미롭다. 한국의 주된 역사교육이며 역사관이 비틀려 있다 느낄 때가 많지만, 예르생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누구나 바로 떠올릴 만큼은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지구의 웬만한 위인보다 많은 인간을 구하였고, 어쩌면 그중엔 한반도 사람도 적지 않을 수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앎이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리란 믿음의 증거같은 삶을 살지 않았던가. 무지를 밝혀 앎으로 나아가고 그 앎으로써 현재를 바꾸려던 시대를 근대라 한다면, 예르생보다 더 근대적인 인물도 흔치는 않은 것이다.
알렉상드르 예르생, 1863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세균학자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거둬간 질병의 원인균을 추적했고 마침내 멀고 먼 땅에서 그 목적을 이뤄냈다. 나는 그의 묘에 내가 가장 많이 마신 술 한 잔을 올리고 여적 남아 있다는 그의 서재를 직접 보기 위하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류가 전 세계적 질병이라 부를 만한 것을 처음 경험한 건 14세기다. 14세기가 어떤 시대인가. 해로로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까지 나아갈 기술력을 얻었고, 몽골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제국이 아시아로부터 유럽까지를 휩쓴 시대가 아닌가. 흑사병이니 페스트니 대역병이니 플라그니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급성 질병은 발병한 지 단 몇 시간 만에 인간의 목숨을 앗아갔다. 대처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 질병은 세계 각지에서 여러 도시와 마을을 처참하게 휩쓸고는 잦아들길 반복했다. 다른 질병과 확연히 구분되는 진행속도와 치명률은 문화권을 넘어 이 질병이 같은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약 오백년 동안 어림잡아 수억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이 질병에 대하여 인간은 거듭 수세적인 입장에서 싸움을 벌였다. 언제나 무차별적 공습을 당하였고 지극히 일부 지역에서 사망자의 시신이며 옷가지를 불에 태우는 정도의 대책을 경험적으로 얻어냈을 뿐이다. 인류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이 질병에 대하여 공세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많은 질병이 세균 감염을 통해 비롯되며 원인균을 밝혀내면 그 대책 또한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뉴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를 무너뜨린 뒤 인류가 비로소 다음 장을 열었듯이, 루이 파스퇴르가 있고 나서야 감염에 대항하는 방책들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예르생은 파스퇴르 연구소가 낳은 대표주자라 해도 좋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찾기 위하여 먼 바다로 나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듯, 그는 당대 최강의 적을 제압하기 위하여 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던 것이다.
그는 오랜 항해와 탐험, 실험과 연구 끝에 홍콩 연구소에서 마침내 답에 이르렀다. 오늘날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 이름 붙은 박테리아 원인균을 감염자의 림프절로부터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쥐 또한 같은 세균에 감염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파는 쥐와 인간 사이를 오가는 쥐벼룩으로부터 이뤄졌으니, 원인균 포착부터 전파방식의 확인, 방책 수립까지가 일사천리로 전개됐다. 이 무시무시한 질병과 인간 사이에 마침내 장벽이 세워지고 만 것이다. 쥐가 뱀에 이어 인류의 주된 적으로 격상된 것 또한 이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몇년 안에 백신과 항생제의 탄생이 이어지며 인간은 장벽 너머로 나아가 오랜 적을 짓밟기에 이른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