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생을 찾아서 2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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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랩 기사 뒤에서 내린 청년은 제가 의사라고 밝혔다. 임상의는 아니고 무슨무슨 연구를 한다 하였는데 나짱에 온 김에 묘소까지 찾았다 했다. 잘 꾸며진 묘소는 안 그래도 제법 사람이 오가는 듯 관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평일 낮인 탓인지 그와 그랩기사 말고는 다른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직전 들른 수퍼에서 음료수를 잔뜩 마신 탓일까 요의가 느껴졌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화장실 비슷한 곳도 찾지 못했다. 평소라면 대충 아무곳에나 갈겼겠지만 존경하는 이의 묘지 앞에 오줌부터 눈다는 것이 마음에 켕겼다. 실은 그보다 내게 거듭 말을 걸어오는 젊은 친구 앞에서 노상방뇨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방광에도 한계는 존재하는 것이다. 눈치 없이 곁을 맴도는 그에게 나는 화장실이 어딨느냐 물었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제 앞과 뒤를 번갈아 가리켰다. 나는 양손을 사타구니에 두고 오줌발을 갈기는 모습을 과장스레 연출했다. 그러자 그가 긴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에브리웨어 토일렛.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나를 바나나 밭 앞에 놓인 낮은 담벼락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나란히 그 앞에 서서 제 조국의 자존심을 걸고 내면의 뜨거운 무엇들을 쏘아냈다.


일을 마친 뒤 그는 우리가 뜨거움을 배출한 곳이 예르생의 농장이었다 했다. 한국에서 묘지 앞 노상방뇨는 좀 그런 일이라 하자 그는 미스터 뜨라면 그저 웃고 말 것이라 했다. 미스터 뜨가 누구냐 물으니 묘소 주인이라 했는데 나는 그가 묘지 관리자를 알고 지내는 모양이라고 넘겨 짚었다. 한참을 더 듣고 나서야 미스터 뜨가 예르생이고, 나짱 사람들이 그를 미스터 뜨, 아니면 라옹 뜨라고 불렀음을 알게 되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물었으나 서로의 영어실력이 일천하여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자주 그러했듯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활짝 웃었는데 그 모습이 제법 상쾌하여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선선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너 같은 놈이 애인을 두고 홀로 여행을 다니냐 물으니 그는 이런 곳이나 다니는데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미천한 영어실력에도 그 말만큼은 완전히 이해하여서 나는 하하하 웃고 말았다.


예르생은 세균학자이자 동물학자이고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또한 군 장교였고 모험가이며 탐험가였다. 그리고 그 모두에 앞서 지식을 숭상하는 인도주의자로서 평생을 살았다. 그가 나짱에 이른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였다.


미지의 영역을 밝히겠다는 탐험가적 열망은 그를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끌었다. 백신과 제약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홍콩과 중국, 프랑스에서의 영입 제의가 쏟아졌으나 그가 마침내 선택한 건 첫 선택과 이어지는 것이었다. 전도유망한 의사며 연구자보다 항해와 모험을 선택했던 그다. 여전히 미지로 남은 땅으로 나아가 밝혀지지 않은 것과 만나겠다는 열망이 젊은 그를 인도차이나 반도, 그중에서도 내륙 밀림지대로 이끌었다. 베트남 중부의 작은 어촌마을 나짱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참파국이 멸망한 뒤 베트남 역사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중부의 작은 해안에 푸른 눈의 젊은 장교가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흘러 세상 어느 곳도 제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자유롭고 영향력 있는 몸이 되어 다시 그곳을 찾기까지 나짱은 그모습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당국은 예르생에게 전적으로 협조했다. 조국으로의 영예로운 귀환이나 중국과 홍콩 등지에서의 제안을 모두 거부한 채 베트남 시골마을로 들어온 영웅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매력적이고 지적인 사람이 아닌가.


예르생은 나짱 근교에 대규모 농장을 세워 온갖 것을 길렀다. 쌀농사에 한정된 산업을 다양화하기 위한 다양한 작물과 가축을 기르고, 무더운 더위 가운데 위협적으로 퍼져나가는 온갖 가축병을 치유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고무나무를 들여와 말라리아 치료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기도 했다. 태풍피해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하여 해양학과 천문학, 기상학 연구 또한 거듭했고 전기와 통신, 건축과 교육에도 관심을 뒀다. 앎을 사랑한 그가 다른 무엇보다 애정한 건 예술이었다. 그중에서도 문학과 영화에 깊은 애정을 두어 마을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채플린의 영화와 여러 소설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예르생의 선택은 언제나 선명했다. 저보다 다른 이를 생각했고, 이득보다 의를 좇았다. 그를 매료시킨 건 오로지 앎과 아름다움 뿐이었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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