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생을 찾아서 3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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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뛰어난 작품성에도 팔려나가지 않는 책과 영화 또한 많다. 그런 것들엔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나는 예르생에게 바로 그런 특질을 발견한다.


예르생은 열정적인 탐험가였다. 진지한 연구자였으며 수완 좋은 사업가이기도 했다. 제가 뛰어든 많은 분야에서 선명한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가능한 모든 매체에 나서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알리려는 흔한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명성 높은 학자들과 교류하는 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문에도 욕심이 없어 연구며 탐험에 필요한 돈 이상을 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반대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고원을 발견하고 도시를 세운 낭만적인 탐험가이자, 가능한 거의 모든 학문을 제법 깊이 있게 소화한 당대의 지식인으로, 또 프랑스 식민정부의 핵심요인이며 콜라를 처음 상품으로 만들고 아시아 일대에 고무제품을 공급하는 대단한 창업주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 가운데, 심지어는 인류 최대의 난적이었던 페스트를 물리친 것과 관련해서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는 생각만큼 많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는가. 나짱에 있는 예르생 박물관은 과거 그가 살았던 집 자리에 들어서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내보인다. 그리 충실하지는 않으나 이곳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을 만나게끔 한다. 한 인간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그 서재를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을 나는 얼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예르생의 서재가 있다.


당대 프랑스의 지성을 예르생을 어떻게 여겼을까. 프랑스가 자랑하던 철학과 문학은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리, 천문, 물리, 기관, 전기, 기후, 농업 따위가 그의 관심이라 할 것이었다. 거의 전방위적이었던 관심을 늘 최신의 것을 쫓았다. 새로운 정보, 새로운 기술, 그리하여 현재를 다른 무엇으로 연결할 것에 그는 관심을 두었다. 브랜드 몇 병에 딱딱한 빵을 들고 작은 배에 몸을 실어 수달씩 항해를 거듭하였다. 보장된 성공이나 매력적인 여자도 유혹이 되지 못했다.


많은 것을 시시하게 여기며 제가 인정한 것과만 깊은 교류를 이어간 그는, 그러나 아주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어낸다. 가난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나아가 무지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려 하였고 그중 많은 수를 실제로 구해내었다. 그는 마침내 학교와 연구소 설립에 관여해 의학과 해양학, 기상학을 연구하는 베트남의 젊은이들을 길러내려고도 하였다. 베트남인들이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를 오로지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지 않는 것은 그 뒤 이어진 일제의 악독한 수탈에 비하여 훨씬 덜했던 경제적 피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존경할 밖에 없는 예르생과 같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도시라고 부를 수도 없는 나짱에 정착하여 제 모든 것을 그곳과 나누려 한 이다. 그 무렵 그 서재에 새로 들어온 책들은 마지막 십수년 간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잭 런던, 아서 코난 도일, 월터 스콧, 존 골즈워디, 알랭 제르보, 에밀 가보리오와 같은 이들이 그의 서재에 들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어도 제르보와 스콧을 제하면 이중 상당수는 그의 서재에 들지 못했을 이들이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오래된 라틴 문학 또한 뒤늦게 그 서재에 들었다. 과학으로 무장한 장년의 학자에게 문학이 젖어드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유독 바다를, 파도를, 거스르는 일을 사랑한 나이든 청년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마지막을 맞았다. 그가 바란 대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이 땅으로 돌아갔다. 그의 육신과 정신마저도.


매일 아침 소설책 한 권을 들고 마당에 나와 앉은 백발의 노인을 떠올린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불러 사탕 두어개씩 쥐어주던 그를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매주 두어 번씩 열었다는 영화 상영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내게 시간을 넘어 다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볼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닌가 한다. 채플린과 제르보와 예르생과 그가 사랑한 이들이 있는 작은 어촌마을 말이다. 이제는 너무도 변해버린, 어여쁜 여자들이 눈웃음을 웃는 이 화려한 해변을 걸으며 내가 떠올리려 하는 곳 또한 바로 그곳이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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