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생을 찾아서 4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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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삼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재에게 딸이 없단 걸 안 건 사흘째 오후였다. 이 정신나간 유머감각을 가진 그와 맥주 몇캔쯤 까마시다 이 소리를 듣고는 괜히 실연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에라이 집어쳐라 나와서는 야시장까지 가는 그랩을 잡아탔다. 도착하고 보니 야시장은 운영을 하지 않는 모양, 중국인 관광객이 끊긴 뒤로 사라진 많은 것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근처 바에서 술 몇잔을 사마시다 감질이나서 병째 하나를 주문하였다. 붓고 마시고 붓고 마시는데 곁에서 웬 한심한 작자가 어쩌고저쩌고 말을 건다. 글래스고 출신이라는 그의 영어를 나는 도통 알아듣지 못하여 공손하게 자리로 꺼져주십사 하니 술이나 한 잔 나눠달라고 버티고 선다. 어차피 다 마시지도 못할 것, 한 잔을 따라주니 곁에 다른 친구도 다가와 제 잔을 내민다. 그들은 여행 중에 만난 사이로 나중 온 이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왔다고 한다. 그가 응원하는 축구팀엔 한국인 선수가 있다는데 아주 잘 한다면서도 이름은 대지 못한다. 대충 포지션과 플레이스타일, 나이 따위를 물어 작우영임을 알아차린다. 난 아직도 뮌헨 유스에나 있는줄 알았지 뭐야.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외국인과 대화하는 건 삼할쯤 듣고 삼할은 추리하며 사할은 상상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일을 꽤나 좋아하여 아무에게나 말을 붙이고는 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서로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술에 잔뜩 취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술을 비워갈수록 서로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왜 이 도시를 찾았느냐 묻는다. 나는 예르생을 보러 왔다고 하였고 프라이부르크는 저도 예르생 박물관에 들렀다고 말한다. 무덤에는 다녀왔으나 박물관엔 다음날 아침에야 갈 예정이어서 그곳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방명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세상의 멋진 이들 몇이 아름다운 문장을 적어두었다고, 비우티풀을 몇번이나 반복하여 말한다. 그렇구나, 너는 문장을 아는구나, 문장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구나, 나는 기분좋게 취하여 이토록 당치 않은 생각으로 못하이바를 외친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만났는데 이런 술이나 마실 수는 없지 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다. 그가 들고 온 것은 코카콜라인데, 그는 콜라의 창조자가 어쩌고 하며 허락도 없이 위스키 병 안에 콜라를 졸졸졸 따라 넣는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술에 약을 타 여행자를 골로 보내는 그 고전적 수법인가 싶다가, 그가 읊은 몇개의 문장을 떠올리곤 양호가 육항의 술을 마셨듯 그냥 마셔버리기로 마음 먹는다.


콜라의 발견자는 말년에 코카와 콜라, 키나나무 같은 식물을 들여와 나짱 농장에서 길렀다. 돈이 되는 고무나무도 키웠는데, 이 모두가 연구용이며 연구비를 마련하는 사업용이고, 또 향후 나짱과 베트남인들이 산업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그 스스로도 코카나무 추출물을 설탕물에 타서 종종 마시곤 하였다는데, 어떤 탐험길에도 브랜디 몇병을 빼두는 법이 없던 그가 술에 타서 마시지 않았을리 없다. 그때 그 술과 우리가 마시는 이 술이 얼마나 달랐을까를 생각하며 우리는 닿지 않는 대화를 새벽 동이 트기까지 나누다가 영영 헤어지고 만다. 기분좋게 흔들리는 몸을 추스르며 유치원 앞 문 닫은 카페 벽에 기대앉아 수첩에 글을 적어 내린다. 침몰하는 세계 위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이 오래 전 보았던 노을을 떠올리게 한다. 박물관이 문을 열 즈음이 되어 몸을 일으킨다.


가지 않으면 닿지 않고, 닿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서재 가운데 서 생각한다. 내가 기대한 책이 이곳에 있음을,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책도 그 곁에 꽂혀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즐겁다.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 나온 건 해가 중천에 떴을 때다. 시계를 보니 서재 앞에서 보낸 시간만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프라이부르크가 말한 방명록 글귀는 아무래도 영어가 아니었던 듯, 영어 문장은 다 읽어보아도 그렇고 그런 하찮은 것들뿐이다. 구글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와 러시아말까지 번역하고 나서야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찾아낸다. 가만 보니 예르생을 주인공으로 한 꽤 잘 쓴 소설이 몇년 전 프랑스에서 출간된 모양이다. 고증도 제법 철저하여 읽을 만은 하다는데 독서모임을 그렇게 다녔어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겠나. 이 세상 온통 시시한 것들 뿐이다 지겨울 땐 위스키에 콜라를 붓고 예르생을 찾던 계절을 떠올리면 될 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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